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3745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도보다 2.6% 증가했으나 7년째 3만달러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 한국의 GNI는 2017년(3만1734달러) 처음으로 ‘선진국 문턱’이라는 3만달러를 돌파한 뒤 2021년(3만5523달러)을 정점으로 제자리걸음이다. 2022년에는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했다가 다시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중요한 것은 대만과의 비교가 아니다. 장기 저성장세에 갇힌 한국 경제가 언제까지 3만달러 초중반을 오르내릴 것이냐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초저출산율에다 가파른 고령화로 너무 빨리 늙어가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냉철히 보면 ‘3만달러의 늪’에 빠져든다는 우려가 커진다. 기형적 인구구조만 탓할 일이 아니다.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반도체산업에 스며드는 위기감을 비롯해 주력 산업 전반의 내일이 불확실하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AI 경제’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첨단화·고도화 경쟁에서 미래 생존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경제적으로 비효율을 제거하고 정치와 행정 시스템을 혁신하면서 총체적 구조개혁을 해나가야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5만달러로 나아갈 수 있다. 기업의 생산성 혁신 등 자발적 산업 구조조정이 중요하지만 이를 유도해낼 대대적인 규제 혁파와 공공의 효율화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연구개발(R&D) 예산 합리화 등 재정과 세제 개혁, 공공부문 군살 빼기도 다급하다. 나아가 대학을 위시한 교육 시스템과 고용·노동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교육·노동·연금 등 현 정부의 3대 개혁과제부터 지지부진이다. 의과대학 정원을 놓고 의사들이 환자를 제쳐놓고 파업과 길거리 투쟁에 나서는 게 현재 우리 수준이다. 여야 정치권의 행태는 더하다. 아무리 한 표가 아쉬운 선거철이라고 하지만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의 포퓰리즘 경쟁을 보면 4만달러는커녕 2만달러로 돌아가지 못해 난리인 양 퇴행적이다.

지금이라도 고도 경제의 초석을 놓지 못하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처럼 재정위기를 겪은 만성 저효율국보다 못한 나라로 전락한다. 성장과 도약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닌데도 뻔히 보이는 저성장 침체의 길로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