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무라증권이 메모리 반도체 시황 보고서를 내면서 ‘슈퍼 사이클’이 다시 도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도체 시황 개선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지만, 세계적인 증권사가 ‘대호황’ 국면까지 예측한 것은 이례적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슈퍼 사이클은 기술 변화 모멘텀에 따라 2000년대 이후 평균 4년 주기로 돌아왔다. 2002년 PC 보급, 2008년 스마트폰 대중화, 2012년 4G 교체, 2016년 클라우드 서버 증설, 2020년 디지털 전환 등을 계기로 폭발적 수요 증가가 일어났다. 노무라는 인공지능(AI) 기술 진화와 시장 보급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고 있는 점을 들어 슈퍼 사이클 재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AI발(發) 메모리 슈퍼 사이클을 이끌 수 있는 것은 AI 서버용 메모리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생산분 판매 계약이 끝났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우리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66.7% 늘어 2017년 10월(69.6%) 이후 76개월 만에 최대 증가치를 기록했는데 그 주역이 HBM이었다. 노무라는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올 상반기 전년 대비 최대 150%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에 나라 경제가 목을 매고 있는 우리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반도체산업은 슈퍼 사이클 가능성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분위기다. 얼마 전 세계 최초로 5세대 HBM3E 양산에 돌입했다고 선수를 친 것은 3위인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다.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 신제품인 H200에 탑재되고 대만 TSMC와 패키징 협업을 한다며 삼성과 SK를 겨냥한 듯 노골적으로 다른 기업 실명까지 공개했다.

삼성은 마이크론의 8단을 능가하는 12단 HBM3E 개발을 공개했지만,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AI 시대를 맞아 인텔과 일본 반도체 기업들까지 작심하고 역습에 나선 모습이다. 이들의 뒤에는 정부가 버티고 있다. 슈퍼 사이클이 도래할수록 반도체 국가 대항전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