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스페이스
사진=노스페이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특수를 누렸던 패션업체들이 국내외 소비 침체 여파로 지난해 줄줄이 어닝쇼크(예상 밖 실적 악화)를 기록했다. 노스페이스(영원무역홀딩스), MLB(F&F) 등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메가 브랜드를 보유한 간판급 패션 기업들도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팬데믹 기저효과 걷힌 패션업계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영원무역홀딩스의 지난해 매출은 4조3498억원, 영업이익은 8688억원으로 시장 기대치(매출 4조4609억원, 영업이익 9206억원)를 밑돌았다. 전년과 비교해선 매출은 4.1%, 영업이익은 13.3% 줄었다.

영원무역홀딩스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판매하는 영원아웃도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눕시 자켓’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잠정 집계 매출은 전년(8420억원)보다 25.9% 증가한 1조600억원이다. 노스페이스 외에 국내 매출 1조원을 넘긴 패션 브랜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유니클로 세 개뿐이다.

영원무역홀딩스의 실적 부진은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 40여 개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을 만드는 또다른 자회사 영원무역의 매출과 이익이 급감한 영향이 컸다. 영원무역의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각각 7.8%, 22.4% 줄었다. 영원무역은 OEM 사업이 주력이지만, 자전거 제조·판매 사업 비중도 30%가 넘는다. 세계적인 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자전거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영원무역 자전거 사업 부문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OEM 사업 전망도 밝지 않다. OEM 사업부의 작년 3분기 누적 기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줄었다. 형권훈 SK증권 연구원은 “코로나로 인한 기저효과가 걷히면서 실적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증권업계는 영원무역의 올해 영업이익이 작년보다도 10%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본다.

○해외시장 다변화·신사업 진출 속도

MLB, 디스커버리로 유명한 F&F도 작년 4분기 전년 동기 대비 8.2% 줄어든 144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시장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를 13%가량 밑돌았다. MLB와 디스커버리 내수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3%, 5% 줄어든 여파다. 작년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5.1% 늘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60% 넘게 급증했던 2022년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확연히 꺾였다. 작년 MLB의 국내외 매출은 1조4463억원(국내 4997억원·메리츠증권 추정)이었다.

두 패션업체는 실적 개선을 위해 해외 매출처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의 차녀 성래은 부회장이 이끄는 영원무역홀딩스는 2022년 기업형 벤처캐피털인 YOH CVC를 설립하고 850억원 규모 펀드를 조성했다. 친환경 소재나 자동화에 강점이 있는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할 방침이다. 작년엔 국내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중 처음으로 인도에 투자하는 등 공급망 다변화에도 나서고 있다. 총 1억2000만달러를 투입해 12개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F&F는 MLB에 집중된 해외 매출원을 프리미엄 패딩 ‘듀베티카’, 스트리트브랜드 ‘수프라’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올해 인도, 중동에 새로 진출하는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는 40여 개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