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체포 대신 추방…25년간 도피 후 치매 탓 재판도 어려워져
30년전 르완다 대학살 배후는 왜 놔줬나…스위스서 조사
스위스가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의 배후 인물인 펠리시앙 카부가(90)가 자국 내에서 체포 없이 그대로 추방된 과정을 조사하기로 했다.

당시의 추방 조치로 카부가가 25년간 도피 생활을 하면서 중대 범죄인을 신속하게 단죄하지 못한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성에서다.

28일(현지시간) 스위스 연방정부에 따르면 연방장관 7인의 협의체인 연방평의회는 1994년 당국이 스위스로 도피성 입국을 했던 카부가의 추방을 결정한 경위를 조사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는 크리스틴 바데르셔 하원의원을 비롯한 연방의회의 조사 요청에 따른 것이다.

르완다 대학살은 1994년 4월 르완다 다수족인 후투족 출신 쥐베날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탑승한 항공기가 미사일에 격추되면서 촉발됐다.

이후 불과 100여일 만에 르완다에서 투치족 80만명과 온건 후투족 수만명의 희생을 낳으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 중 하나로 기록됐다.

후투족 사업가 출신인 카부가는 대학살 과정에서 자금을 대고 학살을 실행한 민병대 등을 설립한 혐의를 받는다.

대학살이 발생했던 1994년 카부가는 르완다를 떠나 스위스로 입국했다가 추방됐다.

이후 25년간 국제사회의 지명수배를 받았으나 잡히지 않고 도피 생활을 하다 2020년 5월 파리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됐다.

그는 같은 해 10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유엔 전범재판소로 이송됐고 구금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1994년 그를 체포하지 못한 것이 당시 스위스의 형사 사법 체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연방 외무부는 그의 체포를 고려할 것을 요청했지만 법무부와 경찰은 그때의 국제 형사사법 체계에서는 신병을 확보할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가 카부가 추방 경위를 뒤늦게나마 조사하려는 것은 과거의 제도적 미비점이 어떤 역사적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살피고 교훈을 새기려는 취지로 읽힌다.

최근 그의 재판 상황도 스위스의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건을 심리 중인 유엔 전범재판소의 재판부는 지난해 8월께 그가 치매에 걸려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사실상 재판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정의가 지연된 탓에 카부가가 법의 심판조차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가 제기되자 스위스는 40년 전 자국에서 대학살 배후 인물을 '뼈아프게 놓친' 경위를 조사하고 되새길 만한 지점을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