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에 위치한 건물 매각과 관련된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다. 손님은 해당 건물을 지난 2019년도에 매입하여 전체 상가로 임대중인데 코로나 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최근 2년간 1층 상가가 공실로 유지되고 있어 공실 해소방안 및 건물 매각에 대한 상담이었다.

최근 고금리 및 경기침체 우려 등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상가 공실률이 높은 수준이지만 특히 신사동 가로수길내 건물들은 타 지역 대비 공실률이 높아 거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자료를 보면 2023년 가로수길의 공실률은 36.5%로 같은 기간 명동(14.3%), 강남(19.2%), 한남,이태원(10%)등 타 상권과 비교하여 현저히 높은 수준인데 한때 패션업계의 핫플레이스로 불리우던 가로수길이 현재 높은 공실률을 유지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높은 임대료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들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정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영국의 사회학자인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서 낙후된 지역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자본과 중산층의 유입으로 저소득층인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젠트리피케이션 / 출처 : 서울특별시 알기 쉬운 도시계획 용어
젠트리피케이션 / 출처 : 서울특별시 알기 쉬운 도시계획 용어
최초 개념은 구도심의 노후 지역이 재개발을 통해 중산층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활기를 잃었던 도심 공간이 활성화 된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기존 임차인이 또다른 낙후지역으로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거론되는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슬럼화된 상권에 특색있는 공방이나 카페, 식당 등이 하나둘씩 입점하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이후 입소문과 SNS 홍보 등의 영향으로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급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만 입점하고 최초 상권을 활성화시켰던 원주민 임차인들은 외곽으로 다시 쫓겨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주요 사례
1. 압구정 로데오 - 신사동 가로수길
– 압구정 로데오 상권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중구 명동에서 매장을 옮겨오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외국 유학생들로부터 전파된 이국적 취향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반영되면서 당대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발전했다. 해외 유학생들을 일컫는 ‘오렌지족’과 스포츠카를 타고 ‘야타!’를 외치던 ‘야타족’들이 자주 출몰했던 압구정 로데오 상권은 2000년대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 트렌드를 선도하는 곳이었으나 높은 임대료로 인해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때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비싼 임대료에 밀려난 개인 디자이너들이 가로수길에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상권이 형성되었고 이국적인 분위기가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상권이 확장되어 가로수길은 한때 패션 트랜드를 선도하는 상권으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압구정 로데오 상권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지만, 압구정 로데오 상권에서 파생된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의 형성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사진=한국관광공사
신사동 가로수길, 사진=한국관광공사
2. 홍대 상권
– 1990년대까지 문화 및 경제의 전성기를 누리던 신촌은 2000년 이후 열악한 보행 환경과 차량 정체와 더불어 대형 프랜차이즈 위주의 유흥가 상권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이때 신촌의 높은 임대료에 밀려난 예술가들과 인디 밴드들이 홍대로 옮겨가면서 지금의 홍대 상권이 형성되었으며 클럽 문화의 부흥에 힘입어 홍대 상권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홍대 상권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밀려난 임차인들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인근의 연남동, 망원동, 합정동 등으로 유입되면서 다양한 홍대 확장 상권이 형성되었다.
홍대거리, 사진=한국관광공사
홍대거리, 사진=한국관광공사
3. 경리단길
– ‘~리단길’ 열풍의 시발점인 경리단길은 이태원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 등이 입점하면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았으나 현재는 임대료 상승→ 매출감소 → 폐업 증가의 악순환을 겪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부정적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불리한 교통여건에도 불구하고 경리단길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경리단길 만의 독특한 매장 분위기였으나 외부 자본이 유입되면서 획일화된 상권에 주 수요층인 MZ세대들이 떠나면서 현재는 슬럼화가 가속되고 있다.

4. 을지로 인쇄골목
– 을지로3가는 공구상가와 인쇄소 등이 밀집해 있던 지역으로 과거 인쇄업의 활황에 힘입어 인쇄소 5000여 개가 밀집해 있었는데 관련 업종이 쇠퇴하면서 오랫동안 상권 슬럼화가 심화된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2015년부터 종로 상권의 비싼 임대료에 밀려난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 작업실 겸 매장을 열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오래된 건물에 그 들만의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더해지면서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의 유행을 선도하는 상권으로 거듭났다.

이 외에도 서울대입구역 샤로수길(신림역), 문래동 창작촌(홍대상권), 익선동 한옥마을(인사동), 송리단길(방이동 먹자상권) 등이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상권으로 불린다.
북촌한옥마을과 서울 도심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북촌한옥마을과 서울 도심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방안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 확대 및 도시 재생 등 장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임대료 상승에 따른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고, 문화적 다양성 감소 및 상권이 획일화 되는 과정에서 지역적 특성이 사라질 수 있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책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사실 경리단길이나 신촌상권의 사례를 보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임차인과 건물주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상생 방안이 필요한데 다음과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응 방안이 있을 수 있다.

① 정부 정책
성동구는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제정을 통해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하였는데 해당 구역에 지정되면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 입점이 제한되고 건물주에게 임대료 안정 협약을 맺도록 유도한다.
해당 사례를 모든 상권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러한 정부 정책을 통해 상권 획일화를 일정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② 임대료 안정화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임대료가 급등한다는 점에 있다.
현재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통해 임대차 보호기간이 10년간 보장되며 일정 구간의 임차인은 임대료 인상 상한선이 5%로 제한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임대료 급등을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임대료 법제화를 통한 안정화 방안이나 특정 지역내 임대료 상한선을 규제하는 방안으로 임대료를 안정화 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③ 지역 공동체 운영
법제화나 조례 등을 통해 강제화 하는 방안도 방법이지만 지역 전체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방안이 최선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대책이 중장기적으로는 상권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하에 지자체-임대인-임차인 간 지역 공동체를 통해 임대료 및 프랜차이즈 입점을 심사하고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간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여러 사례 및 대책 등을 알아보았는데 근교에 가볼만한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는 것도 좋지만, 성수동이나 을지로 인쇄골목처럼 특색있는 상권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런 특색 있는 상권이 앞으로도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과 해결 방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김웅 하나은행 WM본부 부동산투자자문센터 부동산팀장

※ 본 기고문의 의견은 작성자 개인의 의견이며, 소속회사의 의견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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