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씁쓸한 러시아 경제 호황
러시아 경제의 예상 밖 선전이 이목을 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방 제재로 경제가 고꾸라질 것이란 예상과는 정반대 결과다.

엘리나 리바코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러시아 경제를 “탱크를 만들기 시작한 주유소”에 빗댔다. 전통적 성장 엔진인 석유·가스산업이 버티는 가운데 군수산업이 가세하면서 경제가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올해 국방비는 10조4000억루블로 연방정부 예산(36조6600억루블)의 3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2021년만 해도 4조루블이 안 됐는데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은 2021년 4% 남짓에서 올해 6%로 뛰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군비 지출을 늘리는 걸 ‘군사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하는데, 지금 러시아 경제가 그렇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일 군수산업 중심지 툴라를 찾아 “(러시아) 경제가 다른 곳과 달리 성장하고 있으며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유럽 1위, 세계 5위가 됐다”고 의기양양해했다. 푸틴의 자신감이 커지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과 유럽에는 ‘나쁜 뉴스’다.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면서 북한과 밀착하고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점도 달갑지 않다.

하지만 군비 지출로 경제를 영원히 성장시킬 순 없다. GDP는 특정 기간 소비지출, 투자지출, 정부지출, 순수출의 합이다. 정부가 군비 지출을 늘리면 GDP도 늘어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이 무기를 만드는 데 투입되면 소비재와 서비스 생산에 쓰일 자원은 줄어든다. 국민의 생활 수준이 떨어지고 물가 상승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1, 12월 러시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대에 달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16%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전쟁이 끝나면 군수산업에서 늘어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군비 지출로 이룬 GDP 증가는 진정한 호황과 번영이 아니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