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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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뇌부 승진·전보 정기 인사를 앞둔 경찰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직위에서 물러나면서 빈 치안정감 한 자리를 바로 채울 수 없어서다. 치안정감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차상위 경찰 계급으로 전국에 7명만 있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30일 김 전 청장을 직위해제했다. 검찰이 지난 19일 김 전 청장을 이태원 사고와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기소를 한 지 11일 만이다. 김 전 청장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적절한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고 지휘·감독 등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김 전 청장이 물러난 서울경찰청장 자리엔 같은 치안정감인 조지호 전 경찰청 차장이 올랐다. 경찰청 차장에는 김수환 전 경찰대학장(치안정감)이 연쇄 이동했다.

김 전 청장이 치안정감 정원 중 한 자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경찰대학장 자리가 공석이 된 상태다.

문제는 경찰이 직위와 계급을 일치시키는 인사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웬만한 경우가 아니고선 치안정감의 직위는 치안정감이 치안감 직위는 치안감이 맡는다는 의미다. 경찰법과 행정자치부령에 행정구역 크기 등에 따라 직위에 따른 계급이 엄밀하게 명시돼있다. 여기에 연공서열이 작동하는 계급사회인 경찰 특유의 문화도 더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계급에 따른 직위는 경찰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며 "수십 년 전 정부 조직에 도입된 복수직급제를 지난해에야 경찰이 부분적으로 도입한 것도 이 때문"라고 했다.

경찰은 경찰대학장 자리를 비워둘 수 없고, 치안정감 정원(TO)을 늘릴 수도 없기에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치안정감이 아닌 경찰대학장'을 임명해야 한다.

경찰청이 두 가지를 선택지를 갖고 있다. 첫 번째는 세 번째 계급인 현직 치안감을 ‘치안정감 승진후보자’로 삼아 경찰대학장에 앉히는 것이다. 연말 김 전 청장이 정년퇴직한다면 해당 후보자를 치안정감으로 올리는 방식이다.

직무대리 형태로 치안감을 경찰대학장에 임명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과거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경무관(경찰 중 네 번째 계급) 시절 치안감 자리인 중앙경찰학교장을 이런 형태로 맡은 적이 있다.

과거 전례를 볼 때 이번 경찰대학장 인사가 차기 경찰 인사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동안 경찰대학장에 경찰대 출신이 앉았지만, '비경찰대 우대'가 강해진 분위기상 고시·간부후보생 출신의 치안감이 경찰대학장에 오를 수도 있다. 이 경우 김도형 경기북부경찰청장(간부후보생 42기), 최현석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사시 44회) 등이 '치안감 경찰대학장' 후보자로 거론된다.

경찰은 과거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지방경찰청장(현 경기남부경찰청장)으로 근무했던 시기다. 이 의원은 2011년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4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직위해제됐고, 20개월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경찰에 복귀했다. 경찰은 이 전 청장이 기소된 이후에도 그를 치안정감 직제에 남겨둔 채 경찰대학장에 이금형 치안감을 '치안정감 승진후보자' 조건을 달아 임명했다.

이후 이 의원은 경찰에 복귀했지만, 당시 경찰청은 ‘기존 인사가 헝클어진다’는 이유로 이 의원을 보직 인사에서 제외했고, 이 의원은 결국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공식적인 치안정감 인사는 김 전 청장이 퇴임한 올 하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청은 치안감·경무관·총경 인사를 다음 달 2일에 동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2월 5일에 치안감·총경 관서장 부임, 2월6일 경무관 부임을 각각 진행할 전망이다. 당초 금주 초가 유력했지만, 다소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