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약 10개월 만에 열렸으나 피고인들 신분 확인 절차에 '묵묵부답'
"판사님이 내려와서 보세요" "판사 누군지 확인해야겠다" 파행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제주지역 진보 인사들에 대한 첫 공판이 기소 약 10개월 만에 처음 열렸으나 피고인과 변호인이 재판장 허가 없이 집단 퇴정하며 파행을 빚었다.

제주 국가보안법 위반 첫 공판…피고인·변호인 무단 퇴정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진재경 부장판사)는 29일 오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과 박현우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 고창건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기소 후 약 10개월 만에 열린 이날 공판에서는 초반부터 재판부와 변호인 측 신경전이 펼쳐졌다.

재판장이 피고인 신원 확인을 위해 먼저 강은주 피고인에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했으나 강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대신 변호인이 "(강 피고인은) 환자입니다.

주민등록증 보여드릴 테니 판사님이 내려와서 보세요.

피고인이 법정에서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게 어디 있어요"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재판장은 이어 '피고인 고창건 어느 분이십니까.

손이라도 들어주세요', '박현우 피고인 어느 분이신가요'라고 재차 물었지만 피고인 모두 입을 닫자 결국 실랑이 끝에 검찰을 통해 피고인 신분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이 판사 신분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취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판사석으로 다가가다가 법정 경위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피고인 신원 확인에 이어 검찰이 기소 요지를 설명할 차례에도 이의 제기가 이어졌다.

변호인은 공판준비기일 녹음 파일을 공판 조서에 넣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형사소송법상 공판준비기일 종료 시 쟁점 및 증거에 대한 결과를 검사·피고인·변호인에게 고지하고 이의 유무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며 "졸속 재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장이 "공판준비 절차가 적법하게 종결됐다고 판단한다"며 진행을 이어가자 피고인 3명과 변호인 3명은 모두 법정을 나가버렸다.

재판 시작 20여분 만이었다.

재판부는 '필요적 변호사건(변호인 없이 재판할 수 없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피고인과 변호인이 재판장 허가 없이 퇴정해버린 경우 피고인이나 변호인 없이 심리·판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토대로 재판을 계속 진행했고, 검찰이 공소사실을 설명하고 증인 신문 일정을 정하는 것으로 이날 공판은 마무리됐다.

검찰 측은 "기소 1년이 다 돼간다.

향후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공판은 2월 말 열릴 예정이다.

강씨 등은 북한 지령에 따라 제주에서 이적단체 'ㅎㄱㅎ'를 결정하고 간첩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강 전 위원장은 2017년 7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노동당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과 접선했다.

강 전 위원장은 이후 박 위원장, 고 사무총장과 공모해 2018년 12월부터 제주지역 이적단체 결성을 준비했으며, 지난해 8월 북한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조직결성 지침과 조직 강령·규약을 하달받은 뒤 'ㅎㄱㅎ'을 조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강 전 위원장이 이적단체 결성 총괄을 맡고, 박 위원장과 고 사무총장이 이적단체를 구성하는 하위조직 중 하나인 농민과 노동 부문 조직 결성을 책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위원장이 이를 위해 2017년 10월부터 2022년 11월 4일까지 암호화한 문서를 외국계 클라우드에 올리고 아이디와 계정을 공유하는 '사이버 드보크' 방식으로 북한으로부터 13차례에 걸쳐 지령문을 수신하고, 북한에 14회에 걸쳐 보고서를 발송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박 위원장과 고 사무총장은 북한 지령에 따라 '전국민중대회'와 '제주촛불문화제' 등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고 강 전 위원장에게 대북 보고에 반영할 보고서 등을 전달한 혐의도 받는다.

기소 이후 피고인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4차례에 걸친 공판준비기일 끝에 이들 피고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즉시항고, 재항고까지 이뤄졌으나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국민참여재판 불허를 결정하며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