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의 SM엔터테인먼트 사태는 K팝 글로벌화를 이끌어온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후진적 경영 관행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창업자와 경영진이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선진 지배구조를 도입하겠다던 행동주의펀드는 경영진의 일탈을 방관했고 사외이사는 이를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K팝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에도 국내 엔터산업은 밀실 경영과 ‘거수기’ 이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SM엔터 경영진을 대거 경질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수만 창업자의 처조카인 이성수 최고A&R책임자(CAO)와 장철혁 대표 등이 내쳐질 전망이다. 이 CAO 등은 지난해 초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와 손잡고 이 창업자를 몰아내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이들은 지난해 3월 카카오에 경영권을 넘겼다.

SM엔터를 인수하고 나서 뜯어보니 회사 관리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게 카카오의 판단이다. 특히 SM엔터 경영진이 측근 회사를 고가에 인수하는 등 불투명한 투자를 했다는 의혹이 한국경제신문 보도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SM엔터 경영진은 임원 개인 회사인 텐엑스엔터(10x엔터)와 이 CAO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진 더허브 등을 지난해 9월 인수하면서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0x엔터는 소속 아티스트가 스트레이키즈 출신 김우진 씨 한 명에 현금 312만원을 보유한 회사였지만 SM엔터가 22억원에 인수했다.

카카오는 이달 초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SM엔터 주요 인력의 포렌식 감사에 들어갔다. 카카오에선 자체 감사 및 실태 파악 과정에서 해당 거래 외에도 다수 문제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SM엔터 경영진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의사 결정을 하는 동안 “함께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던 얼라인파트너스와 신임 이사회는 침묵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현 경영진과 손잡고 이 창업자를 공격할 때 SM엔터의 거버넌스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 ‘SM3.0’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의 주장은 다수 주주의 지지를 얻었고, 경영권 확보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주창한 ‘선진 이사회’는 경영진 견제에 실패했다.

경영진의 일탈과 이사회의 침묵은 SM엔터 임직원, 아티스트 이탈과 SM엔터의 경쟁력 약화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SM엔터가 내건 변화에 일조하겠다며 회사에 합류한 인력은 기존 경영진의 행보에 실망해 줄줄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SM엔터 해외 법인에서 업무도 없이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인사들에 대한 고발이 나왔지만 내부 경영진이 이를 무마한 사례도 있다”며 “이런 짬짜미 인사가 반복되자 박탈감을 느낀 직원이 다수 이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