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진 배경엔 매각 대상 기업의 자금난이 장기화한 데다 1세대 창업자의 은퇴 시기가 맞물린 영향이 크다. 매수측에는 ‘옥석 가리기’를 통해 우량 기업을 저가에 매수할 기회가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한국M&A거래소에 따르면 공시 대상 국내 바이오·의약·헬스기업의 M&A는 지난해 67건으로 전년 대비 10% 늘어났다. 이는 정보기술(IT)·콘텐츠(43건), 전기·전자·가스(51건), 금융·보험(47건) 등보다 많은 수준이다.

M&A가 늘어난 데는 투자 환경 악화의 영향이 컸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접수된 바이오기업 파산 건은 2013~2021년 연평균 10건에서 2022년 20건, 2023년 역대 최대 수준인 41건에 달했다. 국내는 호황기에 대거 발행한 전환사채(CB)와 대주주들의 주식담보대출이 ‘폭탄’으로 돌아와 업계의 위기를 가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신약 개발 비용은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조원 넘는 연구개발(R&D) 비용이 들고 개발 기간만 10~15년이 걸린다. 한 바이오업체 대표는 “요즘과 같은 투자 빙하기엔 1인당 수억원에 달하는 임상시험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대부분 오너가 회사나 핵심 기술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B사, K사, L사 등도 매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바이오 1세대가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층인 데다 높은 상속세 부담과 2세의 승계 거부도 바이오기업의 경영권 매각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건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의 별세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맥주사(IV)를 자가 주사할 수 있도록 피하주사(SC) 제형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원천기술을 갖춘 알테오젠이 경영권 매각을 검토하는 것도 1세대 창업주의 은퇴 가능성과 승계 이슈 때문이다. 최근 미국 머크(MSD), 특허전문회사 등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기업의 매물 가치가 역대급으로 떨어지면서 매수 타이밍이 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상위 50개 제약·바이오기업 시가총액은 2022년 대비 5조원가량 빠졌다. 제약·바이오 75개 종목으로 구성된 KRX 헬스케어지수의 시가총액 역시 2020년 말 258조원에서 지난해 말 180조원으로 3년 만에 30% 감소했다. 엄민용 현대차증권 책임연구원은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주요 특허 만료를 앞두고 매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올해 M&A시장에 적극 뛰어들 것”이라며 “금리 인하로 투자 심리가 개선되기 전인 올해가 마지막 바이오기업 바겐세일 기간”이라고 강조했다.

안대규/남정민/오현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