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신라면 카피, 38년 만에 교체
농심이 부동의 1위 라면기업으로 발돋움한 데는 신라면의 공이 컸다. 후발주자인 농심이 삼양식품을 따라잡은 건 1985년. 신라면은 이듬해인 1986년 나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보여주자’ 등의 구호가 퍼지면서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광고 카피는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이었다. 남자는 강해야 하며 울어서는 안 되는데, 신라면을 먹으면 매운맛에, 그리고 맛있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게 광고의 콘셉트였다. 구봉서, 최수종, 박지성, 차두리, 송강호, 손흥민 등이 광고 모델로 나와 눈물을 훔쳤다.

농심이 38년 만에 광고 카피를 바꾸기로 한 것이 화제다. 새 광고 카피는 ‘인생을 울리는 신라면’이다. 농심이 ‘사나이’라는 단어를 빼기로 한 것에 대해 남성 위주에서 양성평등 사회로 바뀌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농심은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다. 이번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새로 채택한 이유는 소비자들과의 연대감이나 정서적 공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제까지 신라면 광고로 성평등 관련 문제 제기를 받은 적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요즘 소비자들이 양성평등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이런 오해를 낳은 것 같다. 실제 인구 대책 용어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제 여야는 인구 대책을 발표하면서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란 용어를 썼다. ‘저출산’이 출산율 하락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돌리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지적을 정치권이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로 대표되는 출산의 개념과 조출생률(인구 1000명당 태어난 신생아 수) 등에서 쓰이는 출생의 개념이 달라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다수 의견이다.

비상구 표시판 그림에 여성을 상징하는 치마를 함께 그려 넣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도 양성평등 사회의 한 단면이다. 지금은 남성을 가리키는 바지만 그림에 나온다. 한쪽에선 이럴 경우 그림이 너무 복잡해진다는 반론을 내놓고 있다.

박준동 논설위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