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출간될 책에 원서 표지를 가져다 쓰려니까, 90년대 표지처럼 낡아 보인다고 팀원들이 뜯어 말린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봤던 장면이 슥 지나간다. X세대 배우가 나와서 누군가를 추켜세우며 “지존”이라 부르자, 옆의 밀레니얼들이 난리법석을 피웠다. 너무 옛날 말투라는 것이다. 그래, 일터라서 그 영상에서처럼 “구려요”라는 말까지는 듣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상한 표지를 피했다면 다행. 다음에 그들이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을 하면, 나도 “내 생각은 이렇게 다르거든요.”라고 하면 되니까.
출처: 장도연의 살롱드립2
출처: 장도연의 살롱드립2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저는 생각이 다르거든요”라는 말을 아무 때나 할 수 있나. 십 분이 훌쩍 넘게 일장 연설을 하는 어느 자리의 ‘지존’ 앞에서 감히 누가 말을 끊을 수 있겠는가. 말을 주거니 받거니 소통은 커녕 가까스로 내놓은 한마디에도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면, 자발적인 팔로어십은 남의 얘기다. 한국에서도 많이 팔린 롭 무어의 <레버리지(Life Leverage)>가 말하는, 타인을 통해 빠르게 성공하는 길은 그렇게 멀어져 간다.

롭 무어는 성공을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지만,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한결 쉽게 도달하라고 주장한다. 차곡차곡 성실히 야근을 쌓지 않으려면 적임자에게 일을 맡겨서 레버리지, 즉 지렛대로 삼으라는 뜻이다. <레버리지>의 홍보 문구는 ‘타인의 시간과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카피대로만 된다면, 위아래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하는 모든 팀장들을 위한 절대 신공을 담고 있다.

세 가지 레버리지

그런데 실리콘밸리에는 레버리지가 두 가지 더 있다. 세계적인 벤처 투자자인 나발 라비칸트는 개인의 힘을 확장해주는 레버리지로 사람, 투자, 코드(인터넷)를 꼽는다. 기술 벤처에 투자해 크게 성공한 경험이 풍부하기에, 투자와 코드라는 새로운 지렛대를 추가했다. (출처: <나발 라비칸트의 말(The Almanack of Naval Ravikant)> 2020, 한국 미출간)

물론, 대다수 평범한 이들에게 투자도 코드도 만만치 않다. 2020년과 이듬해 활황기엔 너도나도 투자 레버리지에 도전했지만, 성공하기가 로또 3등 당첨만큼 어렵다는 진실을 주식 계좌가 깨우쳐주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부유층이 수익을 내는 원천은 대부분이 사업이다. 코드의 일종인 유튜브 역시 대다수에겐 ‘너’튜브 아닌가.
출처: 무빙
출처: 무빙

사람이라는 힘든 레버리지

라비칸트의 글을 읽던 중에, 레버리지를 비교하는 구절에서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 레버리지 수단 중에서 세월이 오래된 순서가 바로 힘이 많이 드는 순서와 일치한다. 남의 노동을 관리하기가 투자보다 어렵고, 코드가 투자보다 쉽다. 2010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전의 상사들한테는 남의 노동 관리가 가장 수월했다. 그러나 2020년대에 기술을 갖춘 테크 엘리트에게는 군소리 없이 착착 돌아가는 AI 지렛대가 가장 수월하다.”

소규모 사업을 경영하는 내 친구는 날이 갈수록 사람 관리가 피곤하고 결과도 들쭉날쭉해서 고용을 하느니 본인이 더 많은 일을 짊어지는 육체적 피로를 선택하겠단다. 라비칸트처럼 아예 리더십을 구습으로 보는 이들도 나온다. 각종 생산성 도구를 사용해 많은 일을 처리하는 슈퍼 개인들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언제나 그래왔듯 세상은 여러 갈래 길이다. 나는 비즈니스 책들을 출간하면서, 미래를 염두에 두되 세상이 뒤집힐 특이점이 당장 도래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안티프레질>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말처럼, 오래 견뎌낸 것은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는 것도 진실의 한 면이다. 혼자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지만, 잘된 협업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이 전통적이고 힘에 부치지만 상대를 보완하는 ‘사람의 레버리지’로 큰일을 도모하는 ‘우리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