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영 루지연맹 사무처장,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으로 동계 행정가 개척
아들 이동근, 청소년 대표팀 골리로 아버지도 못 오른 올림픽 무대 도전
아빠는 루지 행정, 아들은 아이스하키 국대…올림픽 꿈좇는 부자
"올림픽이요? 잡히지 않는 꿈이죠. 하하."
오는 19일 개막하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서 각각 스포츠 행정인과 선수로 활약할 '아빠와 아들'이 있다.

루지 경기부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 이경영(42) 대한루지경기연맹 사무처장과 그의 아들이자 청소년 아이스하키 대표팀 골리인 이동근(14·광운중2)이 주인공이다.

이 사무처장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올림픽 때마다 '감동 드라마'를 써온 한국 루지의 산증인이다.

2013년 국제루지연맹 독일 본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루지와 인연을 맺은 그는 2014년엔 대한루지경기연맹 대외협력관으로 부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에 이바지했다.

한국 여자 루지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출신 아일린 프리쉐(은퇴)의 귀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게 바로 이 사무처장이다.

평창 올림픽 뒤에는 사무처장직을 맡아 대한루지경기연맹 행정을 총괄해왔다.

아빠는 루지 행정, 아들은 아이스하키 국대…올림픽 꿈좇는 부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거쳐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와중에 이번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의 루지 경기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원래 이 사무처장은 '아이스하키인' 출신이다.

중동고, 한양대에서 엘리트 아이스하키 선수로 커나가던 그는 2003 타르비시오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입은 부상 영향으로 실업 무대에 서지 못하고 일찍 은퇴했다.

좌절할 법도 했지만, 아이스하키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를 바탕으로 스포츠인 경력의 '제2막'을 개척해 나갔다.

장교로 군역을 마치고서 2년간 미국에서 유학하며 영어 실력을 키웠다.

마침 평창 대회 유치전이 시작됐을 때여서 여러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은퇴 선수 대상 해외 연수 프로그램을 다녀왔고, 동계 종목 인턴십 프로그램의 하나로 국제루지연맹에서 일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아빠는 루지 행정, 아들은 아이스하키 국대…올림픽 꿈좇는 부자
루지 행정인으로 착실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더 도전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는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어차피 한국은 톱 디비전(1부 리그)이 아니니까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걸 상상만 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지금이나 이 사무처장의 현역 시절이나, 한국 아이스하키가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한 꿈'을 향한 도전이라도 더 하지 못한 게 이 사무처장은 여전히 아쉽다.

그래서 그가 서지 못한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는 아들이 더 자랑스럽다.

아들의 포지션 골리는, 시속 160㎞를 넘는 속도로 날아드는 퍽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여서 안쓰럽기도 하다.

이 사무처장은 수비수 출신이어서 골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잘 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가 골리를 하겠다면서 '넣을 때 희열보다 막았을 때 희열이 더 크다'고 말하던 게 똑똑히 기억에 남아있다"며 웃었다.

아빠는 루지 행정, 아들은 아이스하키 국대…올림픽 꿈좇는 부자
2018년 평창 대회 때 성인 대표팀이 본선에 출전한 것도, 이번 대회에 청소년 대표팀이 출전하는 것도, 한국이 개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캐나다, 핀란드 등 강팀을 잇달아 상대한다.

캐나다와 핀란드는 성인 대표팀 기준으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랭킹 1, 2위인 강국이다.

한국은 21위다.

이동근이 태극마크를 달고 캐나다나 핀란드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동근은 선수 시절 아버지처럼 '잡히지 않는 꿈'을 향해 계속 링크를 제칠 터다.

이 사무처장 역시 언젠가 한국 루지가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 루지 경기는 오는 23일 끝난다.

이어 27∼28일에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대회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

이 사무처장은 루지 일정이 끝나면 곧바로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는 강릉으로 건너가 사랑하는 아들을 원 없이 응원할 계획이다.

이 사무처장은 "아들이 진천선수촌에서 마지막 주전 경쟁도 잘 이겨내고 다시 못 오를 수 있는 올림픽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경기를 펼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