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한미사이언스 제공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한미사이언스 제공
2020년 8월 세상을 떠난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는 국내 제약사들의 롤모델이었다. 많은 제약사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이 그의 '신약 개발' 열정에 존경을 표했다. 복제약 중심의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개량 신약'을 선보이면서 혁신 신약 개발을 위한 디딤돌을 쌓은 데다 글로벌 제약사에 국산 신약을 기술 수출하는 역사를 써왔기 때문이다. 다른 제약사들이 수입약을 들여와 매출을 키울 때도 임 회장은 묵묵히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 지난 12일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OCI그룹 간 통합 발표 후 '한미의 레거시(유산)가 사라질까봐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이유다.

통합 법인의 제약·바이오 사업 부문을 책임지게 된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13일 밤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임성기 창업주의 신약 개발 정신이 한미의 미래 방향성"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신약 개발 동력이 꺾일 수 있다는 외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이런 걱정과는 완전히 반대"라고 했다. 그룹 통합 후 사업 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취지에서다.

임주현 "신약개발은 한미의 미래"

한미사이언스와 OCI그룹의 결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크게 세가지다. ①한미약품의 신약개발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 ②임주현 사장의 제약·바이오분야 경영이력이 짧다, ③서로 다른 이종 기업 간 결합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한 임 사장의 답변엔 '자신감'이 차 있었다. 그는 "한미약품의 연구개발 심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며 "비만·대사, 표적·면역항암, 희귀질환 등의 분야에서 개발이 빠르게 진척되고 있어 곧 가시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에 오른 임 사장은 4달 만인 11월 대대적인 연구개발(R&D)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과거 신약 구분 방식을 따라 ‘바이오’와 ‘합성’으로 이분화됐던 조직 구조를 없애고 ‘비만·대사’, ‘표적·면역항암’, ‘희귀질환’ 등 질환 중심으로 세분화했다.

미래 성장성을 토대로 그룹 역량을 집중할 질환군을 정한 뒤 이에 맞춘 신약 기술을 찾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대부분 R&D 조직을 이런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잠자고 있던 '한국형 비만약' 파이프라인을 꺼내 개발을 주도한 것도 임 사장이다. 당시 사내 후보물질 선정 회의에서 임 사장은 "한미의 레거시'를 지키는 결정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에만 해외 학회에서 40여건이 넘는 신약 과제들을 발표했다"며 "미국 머크(MSD), 앱토즈 등 해외 파트너사와의 협력 범위도 더 넓어지고 있다"고 했다.

20여년 간 창업주 곁에서 경영수업 받아

한미약품 인재개발(HRD)팀을 이끌어온 임 사장은 20여년 간 임성기 창업주를 독대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제약·바이오분야 경영이력이 짧다'는 세간의 우려도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부친을 '아버지이기 전에 존경할 만한 경영자'라고 설명한 그는 "'신약 개발하지 않는 제약사는 죽은 기업'이라는 말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부친의 열정, 신념, 철학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면서 미래 방향성을 정립했고 그것이 신약개발"이라고 했다.

OCI와의 그룹통합 후 각자대표 체제에서 두 회사는 서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임 사장은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 걸으면서 혁신의 길을 찾아온 한미의 DNA는 이번 OCI와의 통합 과정에도 그대로 이식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을 경험한 OCI의 안목과 한미의 전문성을 결합해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취지다.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등의 반발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가족 간 갈등으로 비춰지면 자칫 부친이 일군 회사를 지키는데 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주현 사장도, 그의 모친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도 가장 큰 고민은 '가족 간 갈등 탓에 직원들이 동요해 회사가 흔들리는 것'이었다.

통합 결정 직후인 12일 밤 송 회장이 직접 집무실에서 쓴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보내면서 격려한 이유다. 송 회장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동반자와 함께 보다 크고 강한 경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자산 기준 국내 30대 기업으로 도약하게 돼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탑티어 기업으로 올라설 힘찬 동력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