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양대 문학상 휩쓴 천쓰홍의 화제작
한 가족의 비극에 겹쳐진 대만의 아픈 현대사…'귀신들의 땅'
1980년대 대만 중부의 온갖 미신이 살아 숨 쉬던 마을 용징. 개발의 광풍이 몰아닥친 이곳의 낡은 가옥에 살던 천씨 집안은 오래된 숲을 밀어버리고 새로 지은 타운하우스에 입주한다.

이곳 근처에는 과거 일본군에게 성폭행당하고 죽은 여자 귀신이 남자를 홀린다고 소문이 난 대숲이 있고, 온갖 신과 귀신을 모시는 묘당과 과수원이 있다.

천씨 집안의 막내아들인 어린 톈홍과 다섯 누나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누리기 시작한 대만의 발전상과는 상관없이 고된 나날을 보내며 성장해간다.

장편소설 '귀신들의 땅'은 대만의 젊은 거장으로 꼽히는 천쓰홍(陳思宏·48)의 작품이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그의 작품으로, 대만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받으며 현지 대중과 평단을 사로잡은 화제작이다.

소설을 쓰는 동성애자인 막내아들 톈홍은 독일에서 동성 애인을 살해하고 현지에서 복역한 뒤 이제는 쇠락의 길을 걷는 고향 용징에 돌아온다.

톈홍이 귀향한 때는 귀문(鬼門)이 열려서 온갖 귀신들이 출몰한다는 중원절이다.

큰누나 수메이만 남아있는 옛집에는 둘째와 셋째 누나도 찾아오기로 하지만, 또 다른 손님인 귀신들도 있다.

이 귀신은 과연 어떤 이들의 원혼일까.

죽은 자와 산 자가 모두 모여드는 중원절 제사에 천씨 집안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려는 것일까.

작가는 천씨 부부와 7남매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내는 와중에 불길한 땅을 떠도는 한 서린 영혼들을 강령술로 소환하듯 불러내 위로한다.

또 미스터리한 죽음의 배후를 파헤쳐가면서 범죄소설의 재미도 선사한다.

그런데 왜 '귀신'일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귀신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이자 설정이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짙게 투영된 한 일가족의 이야기에는 대만의 비극의 현대사가 겹쳐져 있고,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귀신은 핵심 장치로 등장한다.

이 작품을 번역한 김태성 번역가에 따르면 귀신은 압제와 폭력과 악습, 그리고 그로 인한 상흔과 고통의 기억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귀신은 대만의 아픈 현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대만에선 17세기부터 네덜란드를 비롯해 대륙의 유민인 정성공 집단, 일본 제국주의, 국공내전에서 패전하고 본토에서 건너온 국민당, 미국의 간접통치 등 다양한 세력에 의해 갖가지 유형의 식민(植民)이 이어졌고, 이 식민의 역사는 압제와 수탈로 점철됐다.

여기에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은 1980년대까지 장기간 계엄을 유지하면서 폭압적인 통치를 했고 저항 세력은 폭력으로 무참히 짓밟으며 희생자들이 속출한다.

한 가족의 비극에 겹쳐진 대만의 아픈 현대사…'귀신들의 땅'
이런 권위주의 통치와 더불어 대만에선 가부장제와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며 "귀신 생산의 필요 충분 조건은 장기간 유지됐다"고 역자는 지적한다.

더군다나 주인공 톈홍은 성소수자다.

이중삼중의 차별과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다.

이런 톈홍은 작가의 모습이 짙게 투영된 소설적 분신이기도 하다.

작가 역시 톈홍과 같은 동성애자다.

'귀신들의 땅'은 이렇게 "귀신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대만의 비극적 현대사를 재료로 소설적 상상력을 극대화해 쓴 수작이다.

천씨 일가의 이야기에선 대만 현대사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길을 걸어온 한국인들의 아픈 역사가 자주 겹쳐 보인다.

작가는 과거는 그림자처럼 반복된다고 했다.

폭력과 차별, 그리고 아픔이 정도는 덜해졌을지언정 여전히 곳곳에서 대물림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과거가 있는 한 귀신은 존재한다.

인간 세계 곳곳에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귀신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서)
민음사. 김태성 옮김. 504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