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남북관계 '91년 체제' 종언 맞나…새 전략 모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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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 선언…대남기구 사라지고 '통일' 지워
북한이 남북한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이후 유지돼온 '특수관계'라는 프레임이 막을 내릴지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작년 연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결론에서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성격을 가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선언한 것이다.
이런 남북관계 규정에 따라 북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를 외무성 주도로 통폐합하는 후속 움직임도 이어가고 있다.
남북문제를 국가간 문제를 다루는 외무성이 주도하는 셈이다.
외무성은 이미 작년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추진에 거부 입장을 공식 발표하면서 남북문제를 다루는 부처로서 위상을 다져가고 있다.
'통일 지우기' 작업도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홈페이지에 있던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코너를 없애고 '조선말대사전' 코너로 대체했으며, 남북교류사업을 담당하는 민족화해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대외 선전매체 '려명'도 대남 관련 소식을 전하던 코너를 홈페이지에서 일제히 삭제됐다.
사실 남북한은 1991년 9월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는 개별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굳어진 분단의 성격에 따라 하나 된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지향해 왔다.
현실과 목표의 불일치 속에서 1991년 12월 13일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 서명한 기본합의서 서문은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명시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이 전제를 근간으로 진행됐으며, 남북간 대화와 합의를 만드는데 기본원칙으로 적용됐다.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과 후속 남북 합의 및 협력사업, 2007년과 2018년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는 모두 이 원칙 위에서 이뤄졌다.
남북간에 체결된 문서를 '조약'이 아닌 '합의'라고 하고, 남북간 왕래를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라고 하는 것도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이 원칙에 기반한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한국 기업 제품이 역외가공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으로 간주돼 무관세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도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주요 설득 논리였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기피했지만, 남북관계는 특수관계라는 명제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그 위에서 관계를 맺어온 셈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정의 내림에 따라 앞으로 과거의 남북관계가 복원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상 1991년 남북이 합의한 특수관계라는 원칙의 퇴장이 불가피하다.
관계라는 것은 쌍방의 공감대가 기본인데다가 그 관계를 주도해온 기구의 폐지는 관계 복원의 돌파구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 사회가 국가간 관계라는 북한의 이러한 일방적 관계 정의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북한을 국가로 규정하기를 기피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 유엔 동시가입국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개별국가로 인정하는 상황에서 이 조항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통일을 이뤄낸 독일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통일 전 서독은 기본법에서 동독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명시하지 않았고 기본법이 잠정적임을 인정하고 통일과정에서 동독 연방의 주를 편입하면서 법을 바꿨다.
또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1969년 취임하면서 '하나의 독일'을 주장한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1972년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 위에서 동서독은 상호 간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당국간 회담뿐 아니라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면서 통일에 다다를 수 있었다.
50년이 지난 독일의 사례가 현재의 한반도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의 모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2022'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조사 대상의 53.4%로 2018년 조사 때 70.7%보다 크게 줄었다.
또 어떤 국가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현재와 같은 두 국가가 17%,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두 국가 52%, 통일된 단일국가 18%로 조사됐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줄고 전후 세대가 늘어나면서 남북한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일의지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태도 변화와 국내 여론 지형의 변화, 국제적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대북한 전략의 전반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정책방향 모색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진화해 가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략적 안정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천명한 만큼 과거 형태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이 핵전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안정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접근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작년 연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결론에서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혔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성격을 가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선언한 것이다.
이런 남북관계 규정에 따라 북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기구를 외무성 주도로 통폐합하는 후속 움직임도 이어가고 있다.
남북문제를 국가간 문제를 다루는 외무성이 주도하는 셈이다.
외무성은 이미 작년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추진에 거부 입장을 공식 발표하면서 남북문제를 다루는 부처로서 위상을 다져가고 있다.
'통일 지우기' 작업도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홈페이지에 있던 '통일은 우리민족끼리' 코너를 없애고 '조선말대사전' 코너로 대체했으며, 남북교류사업을 담당하는 민족화해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대외 선전매체 '려명'도 대남 관련 소식을 전하던 코너를 홈페이지에서 일제히 삭제됐다.
사실 남북한은 1991년 9월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는 개별 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굳어진 분단의 성격에 따라 하나 된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지향해 왔다.
현실과 목표의 불일치 속에서 1991년 12월 13일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 서명한 기본합의서 서문은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명시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이 전제를 근간으로 진행됐으며, 남북간 대화와 합의를 만드는데 기본원칙으로 적용됐다.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정상회담 개최 합의,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과 후속 남북 합의 및 협력사업, 2007년과 2018년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는 모두 이 원칙 위에서 이뤄졌다.
남북간에 체결된 문서를 '조약'이 아닌 '합의'라고 하고, 남북간 왕래를 '출입국'이 아닌 '출입경'이라고 하는 것도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이 원칙에 기반한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한국 기업 제품이 역외가공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으로 간주돼 무관세 혜택을 받는 과정에서도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이 주요 설득 논리였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기피했지만, 남북관계는 특수관계라는 명제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그 위에서 관계를 맺어온 셈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정의 내림에 따라 앞으로 과거의 남북관계가 복원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상 1991년 남북이 합의한 특수관계라는 원칙의 퇴장이 불가피하다.
관계라는 것은 쌍방의 공감대가 기본인데다가 그 관계를 주도해온 기구의 폐지는 관계 복원의 돌파구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 사회가 국가간 관계라는 북한의 이러한 일방적 관계 정의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북한을 국가로 규정하기를 기피하는 정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 유엔 동시가입국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개별국가로 인정하는 상황에서 이 조항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통일을 이뤄낸 독일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통일 전 서독은 기본법에서 동독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명시하지 않았고 기본법이 잠정적임을 인정하고 통일과정에서 동독 연방의 주를 편입하면서 법을 바꿨다.
또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1969년 취임하면서 '하나의 독일'을 주장한 할슈타인 원칙을 폐기하고 1972년 동독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 위에서 동서독은 상호 간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하고 당국간 회담뿐 아니라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면서 통일에 다다를 수 있었다.
50년이 지난 독일의 사례가 현재의 한반도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의 모색은 불가피해 보인다.
통일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 2022'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자는 조사 대상의 53.4%로 2018년 조사 때 70.7%보다 크게 줄었다.
또 어떤 국가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현재와 같은 두 국가가 17%,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두 국가 52%, 통일된 단일국가 18%로 조사됐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줄고 전후 세대가 늘어나면서 남북한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일의지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북한의 대남태도 변화와 국내 여론 지형의 변화, 국제적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대북한 전략의 전반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정책방향 모색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진화해 가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략적 안정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천명한 만큼 과거 형태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이 핵전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안정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략적 접근을 고민하고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