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7년 차를 맞는 양희영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골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양희영이 지난해 11월 LPGA투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티샷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올해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17년 차를 맞는 양희영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골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양희영이 지난해 11월 LPGA투어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티샷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4년 넘게 우승이 끊긴 서른네 살의 운동선수. 불과 50여일 전까지만 해도 양희영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16년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며 4승을 올렸지만 우승 가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잊혀지는 선수가 되는 듯 싶었다. 그의 모자를 채워주던 메인 스폰서가 떠났고, 주변에서도 조심스레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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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쓸쓸해 보이는 모자의 빈자리에 조그맣게 ‘스마일’ 무늬를 그려 넣었다. 골프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지칠 때마다 귀여운 스마일을 보고 웃자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매일의 라운드에 집중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긴 기다림, 그리고 꾸준한 노력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화답했다. 지난해 11월 LPGA투어 최다 상금이 걸린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2월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통산 4승을 거둔 지 약 4년9개월 만의 우승이었다. 우승상금 200만달러(약 26억원)와 시즌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운 그는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꾸고 노력하겠습니다.”

화려했던 시즌을 뒤로 하고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양희영을 전화로 만났다. 그는 “여느 때처럼 매일 연습하고, 체력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26억원의 ‘잭팟’에 들뜨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골퍼의 뚝심이 배어났다.

양희영은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베테랑이다. 2008년 LPGA투어에 데뷔해 올해로 17년 차를 맞는다. 그는 “한주 한주 대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제 이름 앞에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붙더라”며 쑥스러워했다. 스스로는 “대단치 않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간 단 한 번도 시드를 잃지 않았고, 다섯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투어 통산 상금 랭킹 11위(1388만달러·약 182억4909만원)로, 한국 선수 중에서는 통산 21승을 올린 박인비(1830만달러·약 240억585만원) 다음이다.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한 덕분에 가능했던 기록이다.

17년 롱런의 비결은 ‘일상의 힘’이다. 그는 매 대회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부족한 부분을 메모한다. 그리고 대회를 마치면 코치와 함께 이 점을 보완하고 맞춤형 체력훈련을 한다. LPGA투어 데뷔 이후 단 한 대회도 빼먹지 않은 습관이다. 그는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만 오랜 시간 저 자신의 골프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보완하는 데이터가 쌓인 것 같다”며 “여전히 보강할 점이 많지만 계속 채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단단한 멘털도 강점이다. 그는 “제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2022년, 양희영은 최악의 부상으로 은퇴 위기를 맞았다. 어깨와 등을 강화하려고 암벽등반(클라이밍)을 시작했는데, 왼쪽 팔꿈치를 다치면서 샷을 할 때 임팩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부상의 여파로 제대로 된 경기력을 펼칠 수 없었고, 상금랭킹은 58위까지 떨어졌다. 메인 스폰서 계약이 끝난 것도 이때다. 그래도 양희영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하루하루 목표를 세우고, 그 스케줄을 완성하는 것뿐이었어요.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한 걸음씩만 앞으로 나가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양희영은 반전을 이뤄냈다. 부상을 떨쳐내고 시작한 2023년, 다섯 번의 톱10을 기록하더니 결국 최다 상금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맞는 새 시즌, 부담감이 클 법도 한데 그는 “하던 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언제나처럼 매일 자신과 약속한 연습량을 채우고, 퍼트를 가다듬으며 매주 마주하는 라운드에 집중하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꿈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꼽았다. 양희영은 유독 큰 무대에서 강하다. 지난 시즌 메이저대회인 셰브런 챔피언십과 AIG 여자오픈에서 우승 경쟁 끝에 각각 공동 4위에 올랐다. 그는 “메이저대회는 14개 클럽을 고르게 잘 쳐야 한다. 특히 그린 주변 플레이를 잘해야 하는데 짧은 클럽을 좋아하는 저에게 잘 맞는 경기 스타일인 것 같다”며 “올해는 메이저대회에서 꼭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