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얘기해도 할말 많은 여자, 배두나라는 독보적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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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배두나의 ‘레벨 문 : 파트1 불의 아이’는 그리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못했다...고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잭 스나이더의 작품이고 공개 직후에는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오른 작품이다. 지금의 배두나에게는 그런 점 역시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글로벌 배우는 작품의 완성도나 평단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사이즈’가 큰 영화를 거르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배두나는 ‘레벨 문’에서 자신이 지닌 매우 신비한 미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다만 아시아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배우에게는 왜 꼭 총 대신 칼을 쥐게 하는지는 의문이다. 잭 스나이더의 상상력이 거기까지여서일 듯 싶다. 배두나는 동양적 미모를 지닌 배우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걸 두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론까지 들먹일 일은 아니다. 순전히 상업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배두나의 피규어는 어느 나라에서든 써 먹힐 수 있는 매우 유리한 신체조건을 지녔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키가 크다. 170이 넘는다. 서구 배우와 연기 일합을 겨루기에 좋은 조건이다. 서구적이다. 대신 몸의 볼륨감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근데 그게 오히려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서구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역설의 이유이다. 흔하지 않으니까. 얼굴의 생김생김은 매우 ‘컨템포러리’ 하다. 동시대적이면서도 ‘역사적’이다. 은근히 시대극에도 어울리는데 ‘레벨 문’처럼 도무지 시대감각을 일도 짐작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얘기에도 잘 어울린다. 특히 배두나의 얼굴을 보면 한국사람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건 물론 할리우드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야 저 삼국 미인들을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늘 모호한 정체성의 아시안을 선호하는 편이다. 게다가 배두나는 비교적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 아니 자랑하게 됐다. 처음엔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점점 더 할리우드, 유럽, 아시아 각국의 영화감독들에게 캐스팅 우선 순위로 꼽히게 됐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배우는, 일단 영어를 열심히 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은 배두나의 활동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들게 된다. 근데 그녀가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은 한때 애인이었던 영국배우 짐 스터지스때문일까, 아니면 영어를 조금씩 잘하게 돼서 그를 사귀게 된 것이었을까. 참으로 쓸데없는 관심이지만 사실 일상을 살 때는 영화의 작품성이니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쩌느니 하는 주제보다 이런 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 법이다.
어쨌든 둘은 와쇼스키 자매 감독의 이상한 수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같이 나왔었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배두나가 영국을 오가며 같이 지내곤 했는데 지금은 좋은 친구로 남았다고 한다. 배두나는 79년생이고 올해 마흔 넷이나 혹은 다섯이 됐으며 아직 너무 너무 좋을 때인데, 그냥 혼자서 지낸다.
솔직히 배두나는 큰 영화보다 작은 영화가 훨씬 잘 어울린다. 어울린다는 말 보다는 더 성공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 노조미 캐릭터이다. 배두나는 여기서 진짜로 공기인형으로 나와 편의점 주인에게 성적 유린을 당해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는 非인간 캐릭터로 나온다. 노조미는 점점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되기 시작해서 자신의 주인이자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 말도 안되는 이상한 설정의 얘기는 실로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 심금을 울린다. 영화에서 노조미는 종종 공원에 앉아 쉬곤 하는데 어느 날 옆에 앉은 노인이 “요즘 사람들은(요즘의 젊은 것들은이라고 얘기했었던가) 가슴에 심장이 없어 심장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주인은 심장이 없어지는 대신 노조미의 가슴엔 심장이 생기는 중이다. 점점 사람이 돼 가는 노조미는 점점 사람이 되지를 못해 가는 남자를 살해한다.
아마도 이 얘기는 한 주택가에서 남자를 살해한 평범했던 여자, 혹은 주부의 이야기, 그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인 바 그런 사건에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히로카즈 감독의 비범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노조미 역으로는, 지금 생각해 봐도, 배두나 외에는 없다. 배우는 그런 것이다. 자신 외에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바로 그 부분에 스타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노선이 정해지는 것이다. 배두나는 작품의 뛰어 난 완성도에 비하면, 예술영화의 운명이 늘 그렇듯이, 돈을 많이 번 감독이 아닌 정주리 감독의 영화에 두 편을 연달아 출연했다. ‘도희야’와 ‘다음 소희’이다. 이창동의 후예인 정주리 감독은 이창동처럼 개인이 처한 삶의 딜레마를 사회적 시선으로 융합해서 그려낼 줄 아는 구상 화가 격의 감독이다. 이런 사회파는 대체로 비구상적이지 않다. 감독은 때론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데 있어 그 구체성을 갖지 못한 시나리오로 처절하게 실패하곤 하는데 직접 각본을 쓰는 정주리는 그렇지가 않다. ‘다음 소희’에서 형사 오유진 역의 배두나는 허름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려는 순간 문 안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보다가 소희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 장면은 명백히 이창동의 걸작 ‘밀양’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쥬한 것이지만 그걸 뛰어 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은 직관과 이성 사이에서 팽팽하게 오가는 법인데 이성적이지 않으면 직관이 생기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직관적인 사람일 수록 이성적인 법이다. ‘다음 소희’에서 배두나는 그 변증법을 소화하는 연기를 해낸다. 배두나를 키운 것은 작은 영화이다. 봉준호의 ‘플란더스의 개’가 그랬고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 그랬다. ‘플란더스’에서 배두나는 계속 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두나는 동진(송강호)에게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 악을 쓰다 죽는다. 그때의 배두나를 생각하면 내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난다. 아니 그보다 더 극적이다. 배두나의 최근 영화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 했던 영화는 기이한 프랑스 영화 ‘아이엠히어’였다. 프랑스 감독 에릭 라티고가 만들고 그쪽의 국민배우 소리를 듣는 알랭 사바가 나온 이 영화는 SNS가 만들어 내는 인간 관계의 환상, 그 허상을 코믹하게 그린 내용이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스테판은 언제부터인가 상실감에 빠져 사는데 한국의 ‘수’라는 이름의 여인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페이스 북이었던가?) 참다 참다 그녀를 만나러 한국에 온다. 여인 ‘수’의 반응은 의외이다. ‘정말 여기를 찾아 오다니 저 인간 미쳤어!’이다. 영화는 스테판이 한심스럽게 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배두나가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는 매우 작고 가볍지만 사이버 네트워크로 연결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의외로 깊게 숙고하게 한다. 배두나는 이런 ‘작은 영화’에 어울리고 그녀 본인도 매우 재미있게 임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배두나를 두고는 몇 날 며칠을 두고 얘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다. 그녀의 최근 영화들은 그 ‘구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마약왕’이 그랬고 ‘브로커’가 그랬고 이번 ‘레벨 문’이 그랬다. 뭐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배두나는 어느 새 장르가 됐고 자체 브랜드가 됐다. 배두나는 국내에서 확고한 스타 자리를 굳혔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여배우 글로벌 인지도와 활동 부분에 있어 톱 자리에 올라 있다. 그녀가 지닌 인기의 진짜 이유는 기묘한 ‘간극’과도 같은 것인데 아주 예쁜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이고 서구형인 듯 매우 동양적이며, 40대인 듯 여전히 20대 같고, 지적인 듯 굉장한 왈가닥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게 다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중간자적 느낌이 배두나의 진짜 매력이다. 배두나가 출연한 드라마 ‘킹덤’을 얘기하지 않았다. ‘비밀의 숲’도 좋았던 작품이다. 넷플릭스의 ‘센스8’은 또 어떻고. 현재는 ‘가족 계획’이란 드라마에 출연중이다. 드라마 얘기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도록 한다.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배두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영화나 드라마만큼 더 나올 것이다. 적어도 20년은 더 활동할 것이다. 그것만큼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키가 크다. 170이 넘는다. 서구 배우와 연기 일합을 겨루기에 좋은 조건이다. 서구적이다. 대신 몸의 볼륨감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근데 그게 오히려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서구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역설의 이유이다. 흔하지 않으니까. 얼굴의 생김생김은 매우 ‘컨템포러리’ 하다. 동시대적이면서도 ‘역사적’이다. 은근히 시대극에도 어울리는데 ‘레벨 문’처럼 도무지 시대감각을 일도 짐작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얘기에도 잘 어울린다. 특히 배두나의 얼굴을 보면 한국사람인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이건 물론 할리우드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야 저 삼국 미인들을 단박에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늘 모호한 정체성의 아시안을 선호하는 편이다. 게다가 배두나는 비교적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한다. 아니 자랑하게 됐다. 처음엔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다.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점점 더 할리우드, 유럽, 아시아 각국의 영화감독들에게 캐스팅 우선 순위로 꼽히게 됐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배우는, 일단 영어를 열심히 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은 배두나의 활동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들게 된다. 근데 그녀가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은 한때 애인이었던 영국배우 짐 스터지스때문일까, 아니면 영어를 조금씩 잘하게 돼서 그를 사귀게 된 것이었을까. 참으로 쓸데없는 관심이지만 사실 일상을 살 때는 영화의 작품성이니 배우들의 연기력이 어쩌느니 하는 주제보다 이런 얘기가 훨씬 더 재미있는 법이다.
어쨌든 둘은 와쇼스키 자매 감독의 이상한 수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같이 나왔었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배두나가 영국을 오가며 같이 지내곤 했는데 지금은 좋은 친구로 남았다고 한다. 배두나는 79년생이고 올해 마흔 넷이나 혹은 다섯이 됐으며 아직 너무 너무 좋을 때인데, 그냥 혼자서 지낸다.
솔직히 배두나는 큰 영화보다 작은 영화가 훨씬 잘 어울린다. 어울린다는 말 보다는 더 성공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 노조미 캐릭터이다. 배두나는 여기서 진짜로 공기인형으로 나와 편의점 주인에게 성적 유린을 당해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는 非인간 캐릭터로 나온다. 노조미는 점점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되기 시작해서 자신의 주인이자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이 말도 안되는 이상한 설정의 얘기는 실로 사람들의 가슴을 친다. 심금을 울린다. 영화에서 노조미는 종종 공원에 앉아 쉬곤 하는데 어느 날 옆에 앉은 노인이 “요즘 사람들은(요즘의 젊은 것들은이라고 얘기했었던가) 가슴에 심장이 없어 심장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주인은 심장이 없어지는 대신 노조미의 가슴엔 심장이 생기는 중이다. 점점 사람이 돼 가는 노조미는 점점 사람이 되지를 못해 가는 남자를 살해한다.
아마도 이 얘기는 한 주택가에서 남자를 살해한 평범했던 여자, 혹은 주부의 이야기, 그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것인 바 그런 사건에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히로카즈 감독의 비범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노조미 역으로는, 지금 생각해 봐도, 배두나 외에는 없다. 배우는 그런 것이다. 자신 외에는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바로 그 부분에 스타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노선이 정해지는 것이다. 배두나는 작품의 뛰어 난 완성도에 비하면, 예술영화의 운명이 늘 그렇듯이, 돈을 많이 번 감독이 아닌 정주리 감독의 영화에 두 편을 연달아 출연했다. ‘도희야’와 ‘다음 소희’이다. 이창동의 후예인 정주리 감독은 이창동처럼 개인이 처한 삶의 딜레마를 사회적 시선으로 융합해서 그려낼 줄 아는 구상 화가 격의 감독이다. 이런 사회파는 대체로 비구상적이지 않다. 감독은 때론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데 있어 그 구체성을 갖지 못한 시나리오로 처절하게 실패하곤 하는데 직접 각본을 쓰는 정주리는 그렇지가 않다. ‘다음 소희’에서 형사 오유진 역의 배두나는 허름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려는 순간 문 안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보다가 소희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이 장면은 명백히 이창동의 걸작 ‘밀양’의 마지막 장면을 오마쥬한 것이지만 그걸 뛰어 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은 직관과 이성 사이에서 팽팽하게 오가는 법인데 이성적이지 않으면 직관이 생기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직관적인 사람일 수록 이성적인 법이다. ‘다음 소희’에서 배두나는 그 변증법을 소화하는 연기를 해낸다. 배두나를 키운 것은 작은 영화이다. 봉준호의 ‘플란더스의 개’가 그랬고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이 그랬다. ‘플란더스’에서 배두나는 계속 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두나는 동진(송강호)에게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 악을 쓰다 죽는다. 그때의 배두나를 생각하면 내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난다. 아니 그보다 더 극적이다. 배두나의 최근 영화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 했던 영화는 기이한 프랑스 영화 ‘아이엠히어’였다. 프랑스 감독 에릭 라티고가 만들고 그쪽의 국민배우 소리를 듣는 알랭 사바가 나온 이 영화는 SNS가 만들어 내는 인간 관계의 환상, 그 허상을 코믹하게 그린 내용이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스테판은 언제부터인가 상실감에 빠져 사는데 한국의 ‘수’라는 이름의 여인과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페이스 북이었던가?) 참다 참다 그녀를 만나러 한국에 온다. 여인 ‘수’의 반응은 의외이다. ‘정말 여기를 찾아 오다니 저 인간 미쳤어!’이다. 영화는 스테판이 한심스럽게 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배두나가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영화는 매우 작고 가볍지만 사이버 네트워크로 연결된 관계의 본질에 대해 의외로 깊게 숙고하게 한다. 배두나는 이런 ‘작은 영화’에 어울리고 그녀 본인도 매우 재미있게 임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배두나를 두고는 몇 날 며칠을 두고 얘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다. 그녀의 최근 영화들은 그 ‘구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마약왕’이 그랬고 ‘브로커’가 그랬고 이번 ‘레벨 문’이 그랬다. 뭐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배두나는 어느 새 장르가 됐고 자체 브랜드가 됐다. 배두나는 국내에서 확고한 스타 자리를 굳혔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여배우 글로벌 인지도와 활동 부분에 있어 톱 자리에 올라 있다. 그녀가 지닌 인기의 진짜 이유는 기묘한 ‘간극’과도 같은 것인데 아주 예쁜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이고 서구형인 듯 매우 동양적이며, 40대인 듯 여전히 20대 같고, 지적인 듯 굉장한 왈가닥같은 느낌을 준다. 모든 게 다일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다는 그 중간자적 느낌이 배두나의 진짜 매력이다. 배두나가 출연한 드라마 ‘킹덤’을 얘기하지 않았다. ‘비밀의 숲’도 좋았던 작품이다. 넷플릭스의 ‘센스8’은 또 어떻고. 현재는 ‘가족 계획’이란 드라마에 출연중이다. 드라마 얘기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도록 한다.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배두나는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영화나 드라마만큼 더 나올 것이다. 적어도 20년은 더 활동할 것이다. 그것만큼 다행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