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억만장자
순자산 10억달러(약 1조2800억원) 이상인 사람을 가리키는 억만장자(billionaire)는 초부자를 상징하는 용어다. 이런 억만장자 순위를 평가하는 것으로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가 있다. 주로 보유 지분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 부자 순위를 매일 경신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최고 부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순자산은 총 2324억달러(약 301조2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무려 954억달러(약 123조8000억원)를 늘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에게 넘겨준 1등 자리를 되찾았다.

세계 500대 억만장자 명단을 보면 기술 혁신을 주도한 빅테크 창업자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10대 부자로 좁혀 봐도 머스크를 비롯해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3위),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4위), 마크 저커버그(메타 CEO·6위), 래리 페이지(구글 공동창업자·7위) 등 첨단 혁신가가 8개 자리를 휩쓸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금리 환경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기술주들이 기록적인 강세를 보여 재산을 불렸다.

한국인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228위)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대만 8명, 일본 5명, 싱가포르 4명이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6월 말만 해도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가 세계 423위에 오르고, 2021년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 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장 홀로 자리를 지키는 형국이다.

한국에 글로벌 억만장자가 적은 원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징벌적 상속세와 함께 그동안 우리의 성장 모델이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꼽힌다. 지금껏 한국 경제 성장의 90%는 신기술을 쫓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창출하는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기업 문화를 혁신할 때다. 갑진년에는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 우리 기업인 이름이 대거 올라가길 바란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