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오른쪽)이 사우디 주바일 산업항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건설 제공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오른쪽)이 사우디 주바일 산업항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건설 제공
‘오일 달러’를 앞세운 중동은 ‘K건설’의 최대 수주 무대이자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한 발주처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처음 진출한 건설회사는 삼환기업이다. 1973년 고속도로 공사(2400만달러)를 수주한 이후 국내 건설사가 잇따라 진출했다. 국내 건설사의 맏형인 현대건설도 1975년 해군기지 해상공사(2억달러)를 따내며 중동에 발을 들여놨다.

중동 붐은 1976년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이 ‘20세기 최대의 역사’인 주바일 산업항을 수주하면서 본격화했다. 주바일 산업항 공사는 한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미국 등 9개국 31개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할 정도로 세계가 주목하는 프로젝트였다. 공사금액 9억6000만달러는 당시 한국 국가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비용 절감과 공기(공사기간) 단축을 승부수로 던진 게 주효했다. 현대건설은 인건비와 재료비가 낮은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철근 구조물을 제작해 해상으로 옮기는 혁신적 방안을 고안했다. 공기도 6개월이나 단축했다. 이후 현대건설은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공사, 두바이발전소 등 중동지역 대형 공사를 싹쓸이했다.

주바일 산업항은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가 주바일 지역에서 생산한 석유화학 상품을 세계에 수출하는 핵심 거점이 됐다. 현대건설과 아람코가 다져온 신뢰를 기반으로 정유·석유화학·가스 분야에서도 수주가 잇따랐다.

현대건설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작년 7월 아람코의 중장기 성장 프로젝트 ‘나맷 프로그램’을 통해 아람코의 건설 설계·조달·시공(EPC) 부문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아람코가 입찰 가격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파트너로 EPC 부문에서 전 세계 3개 회사를 선정했다. 이 중 2곳을 한국 기업이 차지한 것이다.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은 “한국 기업은 중동에서 ‘공기와 공사비는 무조건 지킨다(on time, on budget)’는 신뢰를 얻고 있다”며 “발주처와 신뢰를 기반으로 포스트 오일 시대에 중동 붐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