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어트, 힐튼 등 미국의 특급 호텔 브랜드가 세계로 뻗어나간 건 2차 세계대전 이후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인들은 해외 각지로 여행을 떠났다. 콘래드 니컬슨 힐튼과 존 월러드 메리어트는 그전까지 대세였던 유럽식 호텔이 아니라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적용한 호텔 체인망을 곳곳에 구축했다.

일본 특급 호텔의 발전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오쿠라, 닛코, 토요코인 등 일본의 주요 호텔 체인은 일본인들이 물 밀듯이 해외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글로벌 호텔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힐튼처럼…롯데호텔 '글로벌 체인' 구축한다

해외로 나가려는 롯데호텔

올해 1~9월 해외로 떠난 한국 관광객은 1619만5000명에 달했다. 연간 기준으로 2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텔업계에선 “미국, 일본 호텔의 성장 궤적을 보면 롯데, 신라 등 한국의 특급 호텔에도 해외로 뻗어나갈 기회가 온 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힐튼처럼…롯데호텔 '글로벌 체인' 구축한다
국내 호텔업계에서 해외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롯데호텔이다. 지난 7월 취임한 김태홍 호텔롯데 호텔사업부(롯데호텔) 대표(사진)는 취임 후 “해외에 16번째 롯데호텔 간판을 걸라”고 특명을 내렸다.

롯데호텔은 13곳의 해외 호텔을 운영 중이다. 내년 오픈 예정인 L7 시카고 바이 롯데(가칭)와 2025년 개관 예정인 롯데호텔 소치(가칭)까지 포함하면 총 15개 점이 된다. 운영 객실은 약 4000실이다.

롯데호텔은 2010년 해외에 첫발을 디뎠다. 모스크바를 시작으로 뉴욕, 시애틀, 시카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 롯데호텔을 열었다. 하지만 베트남(하노이, 호찌민에 3개), 러시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소치에 4개) 등 특정 국가에 몰린 데다 비인기 지역(타슈켄트팰리스, 사마라, 양곤)에도 흩어져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왔다.

“일본, 싱가포르에 출점 검토”

김 대표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투 트랙 전략’을 내놨다. 유동 인구가 많은 거점 도시로 확장하는 게 첫 번째다. 이를 위해 일본,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 관계자는 “일본에 아라이리조트를 운영 중이긴 하지만, 주요 공항과 거리가 멀어 일본 내 한국 관광객 급증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도쿄, 오사카 등 관광 중심지에 롯데호텔을 열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고 말했다.

성장성이 높은 신흥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노이 호떠이(西湖·웨스트레이크) 인근에 2025년을 목표로 시그니엘 호텔 개관을 추진 중인 게 그런 사례다. 시그니엘 웨스트레이크점이 문을 열면 최고급 시그니엘 브랜드의 해외 1호점이 된다.

위탁 운영 내세워

롯데호텔은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해 ‘에셋 라이트(Asset Light)’ 전략을 기조로 삼고 있다. 위탁 운영 방식으로 토지나 건물 등의 부동산을 직접 매입해 운영하는 직영보다 부담이 적다. 브랜드 가치가 높아야만 채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롯데호텔은 해외에 총 5개의 위탁 운영 호텔을 두고 있다. 롯데시티호텔 타슈켄트팰리스, 롯데호텔 양곤, 롯데호텔 사마라, 롯데호텔 시애틀과 지난 9월 L7 브랜드로 처음 진출한 하노이 L7호텔이다.

롯데호텔의 해외 확장은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를 위한 필수 관문이기도 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롯데호텔이 해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국내 다른 호텔 상장사들과의 차별점을 부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