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최초' 태양광발전으로 노령연금까지…튼실한 마을기업 발돋움
화장품·캠핑장 등 소득 창출 사업 착착…"동네에서 일하는 게 좋아"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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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별천지] ⑲ 소양강댐 수몰 아픔 딛고 햇살 품은 인제 남전리
햇살은 도시와 농촌을 편 가르지 않는다.

햇살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비추어 준다.

햇살은 차가운 마음도 따스한 봄날처럼 녹인다.

햇살은 어둠을 뚫고 더욱 찬란하게 비춘다.

강원 인제군 작은 산골 마을인 남전1리는 마을 이름에 '햇살'을 따 2008년 '햇살마을'이라고 지었다.

편 가르지 않고, 공평하게 비추어 주고, 마음을 녹이고, 어둠을 뚫는다는 '햇살'을 마을 이름에 붙인 이면에는 한때 반목과 불신으로 마을이 양분됐던 아픔과 이를 딛고 다시 화합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전쟁통에는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벌어졌고,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에 소양강댐 준공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버린 곳.
햇빛과는 거리가 먼 것만 같았던 남전1리는 이제는 태양광발전시설 설치, 화장품 제작, 글램핑장 운영 등 각종 사업을 통해 햇빛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 '한강의 기적' 이끈 소양강댐…그 이면엔 수몰민 아픔
주민 대다수가 농사를 짓는다는 남전1리는 농촌 마을이라기엔 주변에 산이 매우 많은 곳이다.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장미과에 속하는 쪽나무가 밭에 많아 쪽밭골로 불리다가 쪽 남(藍)에 밭 전(田)자를 붙여 남전리라 불리게 됐다는데 고개를 사방팔방으로 돌려봐도 밭보다 산이 더 많다.

예전에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던 탓에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산'인데 지목을 살펴보면 '전'(田)으로 되어있는 곳이 왕왕 있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산골에 주민들이 땅을 일군 이유는 다름 아닌 '소양강댐'에 있다.

1973년 10월 소양강댐이 준공으로 인해 주택과 농경지가 모두 물에 잠기면서 집단 이주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38대교가 놓인 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주민들은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타의에 의해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굽이굽이 별천지] ⑲ 소양강댐 수몰 아픔 딛고 햇살 품은 인제 남전리
소양강댐은 국가적으로는 '한강의 기적'을 이끈 주역이었을지 몰라도 주민들에게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남전리 가구 95% 이상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현재 남전1리에 본토박이 주민은 대여섯 가구뿐이다.

그 이후로 먹고사는 게 얼마나 팍팍했을지 지명유래에서도 엿보인다.

화전밭을 일구기도 힘들었고 농사 또한 짓기가 어려운 지형 때문에 붙여졌다는 '거칠골', '연중 안개가 많이 끼고 여름에도 햇빛을 보기 어렵다는 '흐리골'이 그 예다.

전쟁터로 익숙한 '박달고지'(박달고치)도 예전에는 '동대'로 불렸던 곳이다.

남전1리와 원대리 경계에 있는 이곳은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서화면, 동쪽으로는 기린면, 서쪽으로는 춘천 가마산이 보이는 사방이 확 트인 지형으로 감독할 동(董)을 붙여 동대로 불리다가 6·25 전쟁 이후부터 박달고지로 불리고 있다.

산골짜기에 붙은 '뱃터고개'라는 이름은 곰곰이 생각하면 의아하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내려온 지명으로, 배를 정박할 수 있는 곳이라 해서 뱃터라 불리는데 실제 1975년 벌목운반길을 개설할 때 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갈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다.

[굽이굽이 별천지] ⑲ 소양강댐 수몰 아픔 딛고 햇살 품은 인제 남전리
◇ 반목 딛고 의기투합…주민 연 소득 5천만원 마을기업 키워내
산골 마을이면 자연 덕 좀 보고 살았을 법도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 큰 농사를 짓기는 어려웠다.

남전리 주민들이 자연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대 들어서다.

100가구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은 2004년 인제군 종합장묘센터 유치를 두고 반목과 불신으로 인해 두 쪽이 났다.

2008년 새·농어촌 건설 운동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은 다시 화합했다.

이때부터 마을의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고, 때마침 태양광발전시설 도입으로 마을명을 '남전1리 햇살마을'로 정했다.

주민들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때다.

사업자등록증부터 태양광발전사업 허가증, 사회적기업 인증서, 화장품 제조판매업 등록필증, 특허증, 통신판매업 신고증 등은 햇살마을이 지난 10여년간 '마을기업'으로서 걸어온 길이다.

햇살마을은 마을 단위로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2006년 태양광발전소 사업계획을 세워 2008년 9월 30일 마을 일원에 300㎾급 태양광발전소를 조성했다.

2차, 3차에 거쳐 총 설비용량 528㎾를 설치하면서 전국에서 견학 오는 곳이 됐다.

이 사업을 통해 매년 2억원이 넘는 이익을 거두면서 남전리 주민들은 전기세를 지원받는 것은 물론 마을 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75세 이상 어르신은 매월 18만원을, 80세 이상 어르신은 매월 23만원의 '노령연금'을 받고 있다.

[굽이굽이 별천지] ⑲ 소양강댐 수몰 아픔 딛고 햇살 품은 인제 남전리
2011년 한 주민이 조경용으로 심은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로 유명한 구상나무 수백그루도 생각지도 못하게 주 수입원이 됐다.

주민들은 구상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이 아토피와 여드름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비누, 샴푸, 스킨, 핸드크림 등 화장품을 만들었다.

뜻밖에도 햇살마을이 멸종위기종인 구상나무의 생육에 적합하다고 확인되면서 주민들은 인제군과 인제국유림관리소 협조를 얻어 박달고지를 오르는 임도 변에 구상나무를 심었다.

인제국유림관리소에서는 마을 일원에 5㏊(5만㎡) 규모로 구상나무 군락지를 조성했다.

햇살마을은 소양강댐 준공으로 인한 희생을 감내한 보상으로 받은 한강수계기금 5억원으로 캠핑장도 만들었다.

농업 소득에 더해 이 같은 마을 공동사업들로 주민 대부분이 한 해 평균 5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전상천(44) 햇살마을 이장은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하고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사람과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보전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적인 가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과 노력 때문일까.

"외부에서 일하는 것보다 동네에서 일하는 게 더 좋다"는 주민들의 말이 퍽 따스하게 느껴졌다.

[굽이굽이 별천지] ⑲ 소양강댐 수몰 아픔 딛고 햇살 품은 인제 남전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