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인터뷰…"순수예술 예산 5천억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
내년 예술위부터 책임심의제 적용…"기관장 선임방식 개선도 필요"
[일문일답] 유인촌 장관 "상생하지 않으면 새로운 변화 올 때 망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난 날은 경복궁 담벼락이 낙서로 두 차례나 훼손돼 분노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2008년에 처음 장관에 취임하고서 숭례문 화재 현장으로 첫 출근한 기억이 나요.

그런데 어떻게 또 문화재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일이 일어나나…."
지난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유 장관은 15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철저한 복구는 물론 문화재청과 대책도 세워야 할 것 같다"며 "모방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문화재 훼손에 대한 법 적용도 엄격하게 돼야 할 것이고,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리는 국민적 홍보도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내 '경력직'인 그는 소관 분야 정책과 제도의 선제적인 개선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미 2000년대 후반에 저작권법과 제도를 정비해 지금의 K-콘텐츠 확산에 대응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변화에 끌려가면 한발 늦는다.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를' 하는, 엉뚱하고 과감한 시도로 변화에 앞서 나가야 한다"며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것 같아도, 감각적으로 예측해 앞으로에 대비한 지원 정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장형 장관'으로 불렸던 그는 지금도 그 답을 현장에서 찾고 있다.

취임 후 두 달간 하루 서너개 일정을 소화하며 영상콘텐츠, 문학, 미술, 국악 등 분야별 간담회를 속도감 있게 이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수행하고 귀국한 날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와 마주했다.

그는 "현장 목소리에 집중하는 건 업계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최대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내후년 문체부 예산을 늘리려면 국민 다수가 누릴 정책과 사업도 발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순수예술 예산 확대, 지원사업의 공정한 집행을 위한 책임심의제 도입, 기관장 선임 방식의 개선, 업계 상생을 위한 표준계약서 개정 등 다양한 현안을 설명했다.

과거 장관직에서 내려와 정치권의 손짓에도 무대로 돌아갔던 그는 "퇴임하면 자전거로 국내 여행을 한 번 더 하고, 다시 무대로 돌아갈 것"이라며 "죽기 전까지 1년에 한 편씩만 해도 10년이면 10편밖에 안 된다.

지금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유 장관과의 일문일답.
-- 현장 간담회에서 내후년 순수예술 예산 확대를 여러 번 언급했다.

내년 문체부 예산안이 약 7조권 규모인데, 어떤 수치까지 재구조화한다는 목표인가.

▲ 콘텐츠 부문 예산이 1조원대인데 반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통해 지원하는 순수예술 예산은 1천억원 정도다.

연극, 문학, 미술 등 분야별로 세분화하면 규모가 무척 작다.

순수예술 예산을 5천억원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예산을 늘릴 기회였는데, 예산안이 만들어진 뒤에 와서 아쉽다.

이전에 재직 당시 문체부 예산 목표가 국가 총예산의 1%였는데 올해 1.3% 정도 된다.

향후 문체부 예산이 1조원만 더 늘어난다면, 순수예술 지원 등에 숨통이 트일 것 같다.

-- 지원기관 직원이 심사하는 책임심의제 도입을 추진하는데, 심사 직원이 업계의 새로운 권력이 될 우려도 있다.

▲ 첫 장관 재임 시절 책임심의제를 도입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외부 전문가들이 심사하면 그 책임이 없고 기관도 정산만 할 뿐이다.

책임심의제는 지원을 결정했으면 지원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지원받은 단체가 완성도를 높이는지 끝까지 살펴보자는 취지다.

책임심의관이 권력이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따르니 청탁받고 실력자를 떨어트리는 다른 짓을 할 수가 없다.

지원은 공정하게 실력대로 이뤄져야 한다.

영국과 캐나다 등 해외 기관에서도 내부 직원이 공모 사업 심의에 참여한다.

우리 문화예술기관도 전공자를 뽑아 전문성을 갖도록 육성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내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수시공모사업에 책임심의제를 적용하고 향후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블랙리스트와도 연관이 있는데, 이전에 책임심의제가 시행됐을 땐 그런 얘기가 전혀 없었다.

-- 문체부는 타 부처보다 소속·공공기관이 많아 그간 기관장 임명과 관련된 잡음도 있었다.

당장 내년 초 몇몇 기관장을 임명해야 하는데 방향성은.
▲ 새 기관장은 전문성과 현장성, 역량을 갖춘 적임자가 임명되도록 고심 중이다.

문화예술 분야 기관장의 경우 공모제가 이를 갖춘 적임자를 임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국립중앙도서관의 경우 세 차례나 적격자가 없었다.

공모제의 장점도 있지만 일부 기관의 특수성을 감안해 기관장 선임방식을 개선할 필요성도 느낀다.

또한 존경받는 인물을 모시려면 직급을 승격하는 등 기관장 대우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 최근 첫 기관장 확대회의에서 혁신을 주문했는데 어떤 취지인가.

▲ 혁신은 생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순수예술 예산이 적은데 관광기금으로 관광과 예술이 만나면 시너지가 생긴다.

관광을 살리는 건 지역 문화를 살리는 것이다.

지역 문화는 곧 예술이다.

먼저 우리 부처 소속 기관끼리 해보고 다른 부처와도 시너지를 내보자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살리기 운동에도 문화가 포함되니 협업하면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다.

-- 첫 정책으로 '영상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한 건, 그만큼 중점 분야라는 취지로 읽힌다.

국내 OTT 경영난과 글로벌 OTT의 국내 IP 독점 등 현안이 많은데,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보나.

▲ 영상은 종합 구성물이다.

편당 종사자가 많다.

문체부 입장에선 창작자 보호가 우선인데, 창작자 권리가 강화되면 제작사나 플랫폼이 힘들어진다.

그러니 상생이 중요하다.

각자 문 닫아걸고 자기 것만 챙기면 새로운 변화가 생겼을 때 망한다.

글로벌 OTT가 수백억 원씩 투자하니 제작 단가가 올라가 이를 타개하는 게 큰일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활기를 불어넣는 게 중요하다.

내년에는 국내 OTT와 제작사의 지식재산(IP) 확보를 위한 사업 예산을 342억원으로 편성했다.

국내 OTT의 동남아시아 진출과 문체부 해외 기관을 통해 콘텐츠 수출의 다리 역할도 할 것이다.

소규모 콘텐츠도 활성화하도록 할 것이다.

10편 중 9편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지원을 망설이면 좋은 작품을 못 낸다.

성적이 저조해도 책임을 묻지 않고 성과 편수를 늘릴 것이다.

-- 코로나19 이후 영화관 매출이 회복되지 않았고 투자가 어려워 제작 자체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내년 영화제지원금 등 관련 예산도 삭감됐는데, 영화계 활력을 위한 타개책이 있나.

▲ 미개봉작을 지원하는 '개봉촉진 지원 펀드'를 내년 4월께 100억원 규모로 조성한다.

홀드백(영화가 극장에서 OTT로 가기까지의 기간) 정상화도 중요한 과제로 정부 지원사업 조건에 홀드백 준수 의무를 부과하고 향후 법제화 방안도 검토할 것이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도 지원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가 구분이 안 되는 시대에 영진위가 과거 관행대로 해와 최근 업무보고에서 변화를 주문했다.

이외에도 좋은 감독을 배출한 영화 아카데미가 부산으로 옮겨간 뒤, 장편 영화 연출 외에 메리트가 없어져 다른 방법을 찾을 때가 됐다.

최근 대종상영화제 주최권을 가진 단체가 파산했다고 들어 사태 파악을 해보라고도 했다.

-- 82종 표준계약서 재검토는 진행 중인가.

특히 K팝 업계는 기획사와 연예인의 대등한 관계, 탬퍼링 퇴출 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와 관련한 개정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

▲ 표준계약서가 세분화하는 건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이다.

개인 간 계약까지 정부가 나선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

우리 현실 때문에 표준계약서를 만들었는데, 강화하면 '우리끼리 계약하게 두라'며 또 반작용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환경 변화에 따른 업계 요구가 있어 대중문화 등 7개 분야 표준계약서 개정과 웹소설과 영화연출 등 4종의 표준계약서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예술인과 사업자가 상생할 내용을 담아 균형을 맞출 예정이고, 탬퍼링 방지를 포함하는 방안은 검토 중이다.

-- 두 번째 퇴임한 뒤에도 다시 무대로 돌아갈 것인가.

▲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총선 출마 권유를 받았다.

장관직을 마치고도 정치권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마음이 당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국회에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랬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후회는 없다.

이번에 퇴임하면 나이도 있으니, 다시 무대로 돌아가 앞으로 해야 할 작품을 정리할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