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자격이 없다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해당 판결이 미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가 대선을 앞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슷한 소송이 걸려 있는 다른 주에서도 같은 판결이 이어지거나 미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을 본격 심리하면 대선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면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대선 전에 이번 판결과 같은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내란죄에 해당”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선거 유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1년 1월 6일 있었던 ‘미 의사당 난입 사건’에 개입한 만큼 콜로라도주 대선 경선에 출마할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적 권력 이양을 방해하기 위해 폭력과 불법적인 행동을 선동하고, 여러 주에서 공화당 관리들에게 선거 결과를 뒤집도록 압력을 가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콜로라도주 대법관 7명 중 4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헌법 수정안 제14조 3항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결정했다.

미국 수정헌법 14조 3항은 내란에 가담하거나 헌법을 위협한 적을 지원하면 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이 조항을 근거로 특정 대통령 후보의 대선 출마 자격을 부정한 첫 판단이다. 다만 하급심 결정을 뒤집은 이번 판결은 콜로라도주에만 해당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상고할 뜻을 밝혀 해당 사건은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결정은 내년 대선의 기본 윤곽을 연방대법원에 맡긴 것으로 폭발력이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찻잔 속 태풍 그칠 수도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인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 3항을 제정했다. 내란에 가담하거나 헌법을 위협한 적을 지원하면 공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콜로라도주 외에 25개 이상의 주에서 비슷한 소송에 걸려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이 다른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다른 주 법원에서도 콜로라도주 대법원과 같은 결론을 내리면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과 내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사건과 맞물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와 관련해 투표 방해를 비롯한 4개 혐의로 기소돼 있다.

이번 판결이 콜로라도주에만 적용돼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미네소타·뉴햄프셔·미시간주 법원 등은 관련 소송에서 콜로라도주 대법원과 다른 판결을 내렸다.

이와 함께 콜로라도주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불복할 수 있도록 이번 결정의 효력을 내년 1월 4일까지 유예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즉각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혀 판결 효력은 더 미뤄질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의 스티븐 청 대변인은 “연방대법원이 신속히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 미국적이지 않은 이번 소송을 끝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은 보수와 진보 성향의 대법관 수가 6 대 3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민주당이 내 표를 ‘무효화’하려 한다”며 민주당 주지사가 임명한 콜로라도주 대법관들의 판결을 에둘러 비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