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민투표 앞두고 반대 여론 우세…보수색채 짙은 일부 조항 논란
칠레 '피노체트 헌법' 또 살아남나…신헌법 통과 불투명
남미 칠레에서 군부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헌법을 대체할 새 헌법 제정 여부가 오는 17일(현지시간) 국민투표로 결정된다.

진보적 이념이 대거 반영된 헌법안이 지난해 부결된 이후 1년여 만에 재시도하는 것으로, 이번엔 보수 색채 짙은 조항들로 완전히 탈바꿈해 찬성표 또는 반대표로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다.

13일 칠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신헌법 제정 여부를 위한 국민투표가 1천540여만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17일 시행된다.

국민투표는 2019년 10월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 이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1973∼1990년)인 1980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을 폐기하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진행된 4년여 여정의 결실이다.

2020년 국민투표에서 78%의 국민이 피노체트 헌법 폐기와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한 이후 2021년 출범한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는 원주민과 무소속 등 진보적 성격의 인물로 꾸려진 2021년 제헌의회의 새 헌법을 지난해 9월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거센 반대(61.9%)에 부닥친 바 있다.

이후 올해 국민투표를 거쳐 우파 다수로 구성된 제헌의회 성격의 헌법위원회는 보수적 색채가 짙어진 헌법안을 다시 만들어 정부에 전달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이 헌법안을 통과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칠레 일간 라테르세라와 엘메르쿠리오는 새 헌법에 좌파 집권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문제 삼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고 전했다.

칠레 '피노체트 헌법' 또 살아남나…신헌법 통과 불투명
예컨대 태아 생명권을 광범위하게 보장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는데, 이는 성폭행에 따른 임신의 경우 또는 태아 생존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부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 상황에서 현재 허용하고 있는 임신중절을 위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매체들은 보도했다.

또 대통령령에 따른 집회 제한 가능성과 고액 자산가만 이득을 보는 주택보유세 폐지 등을 헌법에 담아낸 것도 반대파의 비판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주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도 지적 사항 중 하나다.

지난해에 이어 신 헌법안 통과 여부는 이번에도 미지수다.

여론조사 기관 카뎀(CADEM)과 악티바(ACTIVA)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 30일부터 지난달 11월 3일까지 공표된 총 20차례의 조사에서 모두 반대가 찬성보다 우세했다.

가장 최근 조사 결과상으론 응답자 중 50%가 '반대', 35%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결과가 어느 쪽이든 좌파 성향의 보리치 대통령으로서는 자기 뜻과는 상반된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국민투표에서 가결되면 정치 이념적 지향점이 다른 보수적 내용의 헌법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고, 부결된다면 '타파 대상'이었던 피노체트 헌법을 바꿀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2025년 대선 및 총선을 치르는 시간표를 고려하면 보리치 대통령 임기 내에 다시 신헌법 제정 절차를 밟기란 사실상 어렵다.

새 헌법과 관련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좌·우파 이념 대립이 심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커지는 분위기도, 굵직한 선거를 앞둔 보리치 정부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