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장 시절, 尹대통령 직속상사로 호흡 맞춰…업무능력·장악력 등 강점
현정부 첫 권익위원장 이어 '위기의 방통위' 조직수습 책임 맡겨
방통위 구원투수에 尹 신뢰깊은 김홍일…장관급 오른 소년가장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지명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는 윤 대통령과 오랫동안 가깝게 지내며 두터운 신뢰를 쌓아온 사이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의 사퇴로 총선 정국에서 갑작스레 공석이 된 방통위의 파행 운영 위기를 수습하고 조직을 안정시킬 적임자로, 가장 믿을 만한 '구원 투수'를 투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956년 충남 예산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 위원장은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나이에 '소년 가장'이 됐다.

1972년 예산고를 졸업하고도 동생들의 생계를 챙기고 학비를 마련하느라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진 못했다.

3년 뒤인 1975년이 돼서야 전액 장학생으로 충남대 법대에 늦깎이 입학했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세 동생을 제가 맡게 됐을 때 동지섣달 대밭을 울리며 불어대는 찬바람을 견디며 살았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한 적 있다.

1982년 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5년 사법연수원 15기를 수료했다.

충남대 출신 첫 사법고시 합격자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검사가 된 이후로는 '강력·특수통' 검사로 명성을 날렸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인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와 BBK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발탁되고는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이끌었다.

김 위원장이 대검 중수부장이었을 때 호흡을 함께 맞춘 대검 중수2과장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김 위원장과 윤 대통령은 중수부 시절 각별한 사이로 거듭났다고 한다.

주변에선 윤 대통령이 검사 선배 중 가장 신뢰하는 인물로 김 위원장을 꼽는다고 전한다.
방통위 구원투수에 尹 신뢰깊은 김홍일…장관급 오른 소년가장
대통령과 신뢰 관계 외에도 조직 장악력, '자물쇠'로 불릴 만큼 무거운 입 등이 김 위원장의 강점으로 꼽힌다.

검찰 재직 당시부터 권익위를 이끄는 현재까지 업무 처리에 공명정대하고 빈틈이 없으면서 성품이 호탕하고 통솔력 있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권익위원장 임명 전 검증을 받아 이번에 바로 인선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로도 유력하게 검토됐다가, 공전 위기에 빠진 방통위의 소방수로 시급히 등판하게 됐다.

야당에서는 검사 출신인 만큼 방송·통신 업무와 전문성 면에서 거리가 멀다고 비판한다.

윤 대통령은 방통위가 방송·통신 관련 법리와 정교한 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법률 전문가로서 업무 능력이 탁월한 김 위원장을 발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 출범 이래 위원장과 상임위원을 법조인 또는 법률가 출신이 맡은 사례가 꽤 있다.

최성준 전 위원장과 한상혁 전 위원장은 각각 판사와 변호사 출신이었고, 현 이상인 위원장 직무대행도 판사 출신이다.

김 위원장은 검사 시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의혹과 부산 저축은행 사건을 비롯해 박한상 씨 존속 살해, 지존파 납치·살해 사건, 영생교 신도 암매장 사건,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제이유 그룹 로비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강력사건 현장수사론'이라는 책도 썼다.

2013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로 활동했다.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 BBK 의혹 수사에서 당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한 점 등을 문제 삼으며 중수부장이었던 김 위원장 책임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도 야당의 공세 포인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