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시대 종이책 교육에 대한 단상
정부는 지난 17일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안의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디지털교과서의 정의, 검정 절차별 필요 사항을 마련해 2025년까지 수학, 영어, 정보 및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모든 교과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디지털교과서로의 전환은 무척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시청각적 자료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상호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교육을 통해 학습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는 디지털 기반의 교육에서 오히려 전통적 교육 방식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2017년 유치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한 스웨덴은 최근 6세 미만에 대해서는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을 완전 중단하고 종이책과 필기도구를 활용한 전통 교육 방식을 재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초등 3학년부터 필기체 수업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되살렸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학교 또는 수업 중 모바일 기기 사용을 제한한다. 디지털 교육 확대 후 문해력, 사고력이 기대와 달리 오히려 지속적으로 떨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정 내용만 담고 있는 종이책이 깊게 몰입할 수 있어 더 온전한 지식으로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게 한다는 많은 뇌인지과학자의 연구 결과 또한 이런 변화를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교과서는 스크롤링을 통한 내용 훑기와 검색 기능 등이 깊은 사고를 어렵게 한다고 한다. 매리언 울프의 저서 <다시, 책으로>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 일정한 한계를 갖지만 ‘깊이 읽기’ 과정을 통해 뇌의 회로를 활용해 새로운 능력을 형성한다. 무엇보다 이런 ‘깊이 읽기’는 몰입에 의한 ‘인지적 인내심’을 키울 뿐 아니라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 공감 능력으로 확대된다.

종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우려로 디지털교과서를 더욱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재 종이는 벌채된 목재가 아니라 인증된 조림목으로 제조된다. 오히려 디지털교과서 활용을 위한 PC 등 디지털 기기 제조와 생산, 폐기 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종이 제조 시보다 훨씬 높다.

디지털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은 분명 과거와 달라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 종이책만 이용한 교육은 거부감을 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오락으로 생각하는 자세, 주의 과잉, 공감과 인내심 부족이라는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현시대에 전반적 교육의 디지털화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교육 현장에서 종이책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풍성한 사고와 공감력을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