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명에 500만원씩 지급 판결…"헌법·법률 위배 행위로 정신적 고통 명백"
법원 "MB·원세훈, '블랙리스트' 배상…국가배상은 시효 지나"(종합)
이명박 정부 때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이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이세라 부장판사)는 17일 배우 문성근 씨와 방송인 김미화 씨 등 36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공동해 각 원고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문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와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이 정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른 정치적 견해나 이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원고들을 포함한 문화예술인들의 신상정보가 기재된 명단을 조직적으로 작성·배포·관리한 행위는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 행위"라며 "불법행위로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상 명백하기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지만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원배제 명단은 2010년 11월까지 작성됐고 소 제기는 2017년 11월이므로 국가배상법 등에서 규정한 소멸 시효 5년이 지났다"며 "국가가 시효 완성 전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등의 사유가 있었다기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배상 책임 범위에 대해선 "이 전 대통령 등의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원고들은 생존에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도 추가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압박감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국가가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해 진상규명과 피해복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문씨 등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블랙리스트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이들의 활동을 제약하기 위해 작성·관리한 명단을 지칭한다.

국가정보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9월 이명박 정부 때 '좌파 연예인 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정부 비판 성향 방송인을 대거 퇴출했다는 내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총 82명으로 ▲ 이외수 조정래 진중권 등 문화계 6명 ▲ 문성근 명계남 김민선 등 배우 8명 ▲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영화감독 52명 ▲ 김미화 김구라 김제동 등 방송인 8명 ▲ 윤도현 신해철 김장훈 등 가수 8명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