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고학 기틀 세운 삼불 30주기 맞아 박물관서 추모회
"마음속 깊이 본받은 '사숙'"…"문화유산 향한 뜻 이어갈 것"
"늘 새로 시작하는 창조인"…30년 지나 다시 떠올리는 故 김원용
빛바랜 사진이 무대 위 화면을 채우자 강당에 있던 모두가 말이 없어졌다.

사진 속 주인공은 전시 진열장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남성.
1959년 미국 하와이에서 선보일 '한국 국보전'을 준비하며 금관을 꺼내던 그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와 추억을 나눈 사람들은 함께 웃으며 그를 떠올렸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사진은 '바깥'에서 찍은 게 많았다.

그는 백제 무령왕(재위 501∼523)의 무덤을 발굴하는 현장에 있었고,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가 발견된 경기 연천 전곡리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수십 장의 사진이 나왔지만, 한국 고고학과 한국 미술사의 태두라고 일컫는 삼불(三佛) 김원용(1922∼1993) 선생을 소개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늘 새로 시작하는 창조인"…30년 지나 다시 떠올리는 故 김원용
김원용 선생 3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다.

초대 교수로 초빙돼 후학을 양성했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고고인류학과 제자들, 그리고 박물감(현재 학예연구사)으로 임용돼 열정을 쏟았던 국립박물관 후배들이 함께했다.

이백규 고고인류학과 동창회장은 "선생님의 30주기를 맞아 크나큰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후학들에게 베푼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추모회 배경을 설명했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이영훈 전 관장 등이 주도해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국내 고고학·사학·미술사학계 원로를 비롯해 윤성용 관장, 최응천 문화재청장, 김연수 국립문화재연구원장 등 약 200명이 참석했다.

"늘 새로 시작하는 창조인"…30년 지나 다시 떠올리는 故 김원용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나이가 된 원로 학자들은 서로 "건강 괜찮으세요", "삼불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또 얼굴 보네요"라고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고고인류학과 1회 입학생이자 졸업생이었던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는 김원용 선생과의 추억을 공유하며 "선생님과 나는 18살 차이지만, 고고학 창업 동기라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김 교수는 "선생님은 늘 새로 시작하시며 창조하셨다"며 "(후학 중에서) 아직 선생님처럼 세계적인 학자가 나오지 않아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추모사를 끝낸 그는 김원용 선생 사진을 잠시 바라본 뒤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일간지 기자로서 김원용 선생을 오래 취재했던 임연철 작가는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야 학문을 닦았다는 뜻의 단어 '사숙'으로 고인을 기렸다.

"늘 새로 시작하는 창조인"…30년 지나 다시 떠올리는 故 김원용
그는 30주기를 맞아 김원용 선생의 유작을 모은 전시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추모사에서 "삼불 선생은 문화유산을 학문적 영역으로만 대하지 않고 어떻게 보호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아낌없는 조언과 지도를 주셨다"고 말했다.

최 청장은 "지난 30년간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 위상 등이 달라진 건 모두 선생께서 밑거름을 다져주셨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그 뜻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했다.

삼불 김원용 선생은 우리나라 고고학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서울대 교수, 국립박물관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그는 국내 굵직한 발굴 조사 작업을 주도했고 '한국미술사', '한국고고학 개설' 등의 저서를 남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