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젠지 e스포츠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 (제공=라이엇 게임즈)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탈락 위기에 몰린 젠지 e스포츠 미드 라이너 '쵸비' 정지훈 (제공=라이엇 게임즈)
너무 일찍 8강에 오른 것이 독이 됐을까? 3일 오후 진행 중인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국내 리그오브레전드 프로 리그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1번 시드 젠지 e스포츠가 탈락 위기에 몰렸다. 젠지는 중국리그 LPL 2번 시드 빌리빌리 게이밍(BLG)에게 세트 스코어 0 대 2로 밀리고 있다. 8강 경기는 5전 3선승제로 진행된다. 젠지가 한 번 더 질 경우 롤드컵 무대에서 퇴장한다.

당초 젠지가 3 대 0으로 8강 행을 일찌감치 확정 지은 반면 BLG는 3승 2패로 간신히 녹아웃 스테이지에 진출해 젠지의 우세가 전망됐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젠지는 마치 지난 5월 2023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시절로 돌아온 것처럼 일방적으로 밀렸다. 당시 젠지는 BLG에게 세트스코어 0 : 3으로 완패했다.

젠지 입장에선 8강에 너무 일찍 오른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 젠지는 지난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3연승을 거두며 중국리그 LPL 1번 시드 징동 게이밍(JDG)과 함께 지난 10월 21일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젠지 선수들에겐 오늘이 2주 만에 실전인 셈이다. 상위 라운드에 일찍 진출한다는 것은 좋게 생각하면 준비할 시간이 충분한 것이지만 이번엔 나쁜 쪽으로 작용했다. 선수들은 긴장했고 감독과 코치들은 스위스 스테이지 후반에 바뀐 메타를 따라가지 못했다.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젠지를 코너로 몰아붙인 중국리그 LPL 빌리빌리 게이밍(BLG) 선수단 (제공=라이엇 게임즈)
2023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에서 젠지를 코너로 몰아붙인 중국리그 LPL 빌리빌리 게이밍(BLG) 선수단 (제공=라이엇 게임즈)
이는 밴픽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젠지는 2세트 BLG에게 럼블, 자르반, 오리아나, 자야, 레냐타 글라스크를 내줬다. 탑 럼블은 이번 대회 스위스 스테이지 이후 밴픽률이 77% 승률이 67%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1티어 챔피언이다. 미드 오리아나(95%)와 원거리 딜러 자야(96%)는 더 압도적인 1티어 픽이다. 정글 자르반 역시 밴픽률 2위(79%)에 올라있고 레냐타 역시 밴픽률 3위(54%)에 올라있는 메타 챔피언이다. 사실상 상대에게 현시점에 가장 좋은 카드를 모두 내주고 경기를 펼쳤다는 얘기다.

인게임에서도 선수들은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베테랑인 젠지의 정글러 ‘피넛’ 한왕호 마저도 한타에서 궁극기 사용을 실수하는 모습이 나왔다. 실수들이 나오면서 젠지의 강점인 체급은 발휘되지 못했고 오브젝트 앞 대형 한타마다 패했다.

그러나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스스로의 오판을 인정하고 마음을 다잡는다면 젠지는 ‘패패승승승’의 역스윕을 해낼 수 있는 팀이다. 먼저 상대의 강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상대가 애용하는 잭스, 자야, 오리아나 등을 금지하고 새 판을 짜야 한다. 코너에 몰린 젠지가대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젠지가 패할 경우 4강에 BLG와 웨이보 게이밍(WBG)의 대전이 펼쳐지게 된다. 이 경우 결승 한자리를 중국팀이 꿰차게 된다. 지난 2018년처럼 ‘한국 팀이 없는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 결승이라는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