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경 이화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가 <햄릿>의 해설서를 펴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결과를 단정 짓지 않는다. 이분법과 양극화의 지형에서 살아가는 독자들한테 생각거리를 안긴기는 대목이다.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872쪽, 3만8000원)
신간 <모던 키친>은 식품공장과 주방 그리고 농장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한 책이다. 제주부터 강원 철원까지, 산골짜기부터 바다 위까지 식품 제조와 식재료 재배 현장을 전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식품 연구소를 찾아 표준화된 맛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한다. 도미노피자, 굽네치킨, 던킨도너츠 연구소는 ‘복제가 가능한 노하우’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곳이다. 인도 카레, 타코, 햄버거, 치킨 등 맛집의 주방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영업 비결도 엿볼 수 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1946년 5월 3일. 일본 도쿄 중심부 육군사관학교 건물에 11명의 국제 판사가 모였다. 법정으로 개조된 강당에 일본의 전직 군인 및 민간인 지도자 26명이 들어섰다. “극동국제군사재판소를 개회하며, 어떤 사안이든 심리할 준비가 됐다”는 재판장의 선언과 함께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일본 전범 용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도쿄에서의 판결>은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 재판) 준비와 판단 과정, 그리고 재판 결과의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 책이다. 책은 도쿄 재판을 “실패한 재판”이라고 평가한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린 탓에 흐지부지 끝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제법의 허점과 국제사회의 무능함을 드러냈고 이게 오늘날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게리 J. 바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나치 독일 지도자들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의 기록은 풍부하지만 도쿄 재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며 집필 이유를 설명했다.재판은 2년 넘게 이뤄졌다. 도덕적·법적 쟁점이 복잡하게 얽혔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일본 피고에 대해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는지, 전쟁 행위 자체로 범죄가 성립하는지, 나치 독일 사례처럼 조직적인 학살로 볼 수 있는지 등이 문제가 됐다.검찰은 광범위한 증거를 제출했다. 100만 명 이상의 필리핀 사상자, ‘난징 대학살’의 희생자, 눈을 가린 채 참수당한 호주 포로 등 사례가 제시됐다. 수많은 증언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묘사했다. 결국 7명의 피고가 사형을, 16명이 종신형을 받았다. 2명은 그보다 낮은 형을 선고받았다. 1명은 정신이상으로 면제됐다.문제의 시작은 재판부 내부 분열이었다. 일각에서는 일왕을 법정에 올리지 못한 것을 한탄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침략 전쟁에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소 설립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포츠담 선언 당시 “모든 전범에 대한 엄정한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모호한 조건을 내걸었을 뿐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재판소 설립 근거에 대한 불신, 재판부 내부 갈등과 리더십 부재. 모든 문제가 결합한 결과 11명의 재판관 중 3명이 유죄 판결에 반대의견을 냈다. 인도 출신인 라다비노드 팔이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의 행위는 정당방위고 조직적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며 원자폭탄 투하를 고려할 때 미국과 동맹국도 유죄라는 논리를 펼쳤다.반대의견을 낸 이들의 주장은 이후 일본 극우 민족주의자의 입맛대로 활용됐다.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는 팔 재판관 기념비가 있다. 저자는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평화롭고 단결된 서유럽과 달리 전후 아시아에는 불안정한 무질서가 감돈다”고 지적한다.정리=안시욱 기자이 글은 WSJ에 실린 톰 나고르스키의 서평(2023년 10월 28일) ‘Judgement at Tokyo Review: Japanese War Crimes on Trial’을 번역·편집한 것입니다.
과학의 결핍, 경박함이 지배하는 공론장, 가짜 지식의 득세…. 사람마다 체감도는 다르겠지만 부정하기 힘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신간 <다시 읽는 명저>는 부박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단서를 선지자 101명의 사유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의 결실이다.번영과 문명을 가능하게 한 ‘자유의 사상’의 궤적을 충실히 추적하는 게 기본 줄기다.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 <선택할 자유>(밀턴 프리드먼) 등 자유주의 핵심 저작을 충실히 해설한다. 민주주의와 그 대척점에 자리한 전체주의의 본질에도 천착한다. <국가론>(플라톤), <통치론>(존 로크), <미국의 민주주의>(알렉시 드 토크빌), <전체주의의 기원>(한나 아렌트) 등 기념비적 저작이 망라됐다.지적 쇼크를 안긴 미셸 푸코, 토머스 쿤, 지크문트 프로이트 같은 천재의 통찰도 소개한다. 선조들의 지력이 빛나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대용의 <의산문답>, 박제가의 <북학의> 등도 명저 리스트에 올랐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탄생 및 발전 과정, 특질을 탐색한 선구적인 저작들이 책 두께를 더한다.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루드비히 폰 미제스, 발터 오이켄, 밀턴 프리드먼 등 현대 경제학을 주조한 태두들의 숨결이 생생하다.전현직 기자인 저자들은 “한 줄의 문장, 하나의 통찰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전한다. 주옥같은 문장, 탁월한 시선, 숨은 이야기를 촘촘히 담아냈다는 설명이다. 신문 연재 당시 높은 열독률과 뜨거운 댓글 반응을 불렀다. “한국 신문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코너” “이렇게 쉽게 쓸 수 있다니….”대가의 통찰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자리한다. 그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연스레 짐작하게 된다. 삶을 반추해보려는 기성세대, 지적 자극을 갈구하는 청년을 위한 책이다.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