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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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상적혈구(兼床赤血球)병은 이름 그대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적혈구의 형태가 원반이 아닌 낫모양으로 생겨 산소 운반이 원활하지 않은 질병입니다. 현재 의학으로는 주기적인 수혈이나 자신에게 딱 맞는 타인의 골수이식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1회 치료로 완치가 가능한 크리스퍼(CRISPR) 기반 유전자 치료제의 승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버텍스(Vertex Therapeutics)와 크리스퍼(CRISPR Therapeutics)가 개발한 CRISPR 유전자 가위 기반 겸상적혈구 치료제 후보물질인 '엑사셀(exa-cel)'이 현재 신약 승인 과정을 밟고 있는데요, 엑사셀과 관련해 미 식품의약국(FDA)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Adcom)에게 예상하지 못한 오프 타깃 리스크(다른 유전자를 편집하는 위험)에 대한 평가를 의뢰한 결과, 부작용 가능성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 이 치료제를 지지한다는 자문단의 전체적인 의견이 제시되면서 사상 첫 유전자 편집치료제 승인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엑사셀이 신약으로 승인되면 2020년 노벨상을 받은 유전자 편집 도구인 CRISPR 기반의 첫 유전자 편집치료제로 기록됩니다. 겸상적혈구병은 유전자 변이에 의해 만들어진 낫모양의 적혈구가 쉽게 파괴되면서 심한 빈혈을 일으킵니다. 이 병은 모세 혈관의 흐름을 막아 육체적 피로, 극심한 고통과 심장, 신장 등 기관 손상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환자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데, 특히 아프리카나 인도와 같이 말라리아가 흔히 발생하는 지역에 환자가 더 많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태아 헤모글로빈에서 성인 헤모글로빈으로 바뀝니다. 이른바 '헤모글로빈 스위칭(switching)'이 일어나는데요. 겸상적혈구 환자는 성인 헤모글로빈에 유전적 결함을 갖게 됩니다. 유전자 치료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환자의 줄기세포를 추출한 다음 CRISPR 유전자 가위로 스위칭 유전자(switching gene)를 제거한 후 편집된 줄기세포를 다시 환자의 몸속에 넣어 줍니다.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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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텍스와 크리스퍼는 엑사셀의 확증적 임상에서 총 46명의 임상 환자 중 최소 18개월 추적 관찰된 환자는 30명이었습니다. 이 중 29명이 최소 1년간 통증 위험이 나타나지 않았고, 또 30명 모두 통증 치료를 위해 입원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버텍스는 아직 이 치료제의 잠정 가격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겸상적혈구병 치료를 위해 태어나서 65세까지 지출되는 의료적 비용이 대략 160만~170만달러(약 20억~22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약가는 200만달러(약 26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시장에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금리에 따라 혁신적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 기업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주가도 부진하지만 신약 개발을 위한 경쟁과 혁신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CRISPR 기반 유전자 편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또 다른 기업 인텔리아(Intellia Therapeutics)도 파이프라인 'NTLA-2001'의 임상 3상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희귀 유전질환인 트랜스티레틴 매개 아밀로이드증(ATTR) 치료제 후보물질인 NTLA-2001은 간 세포의 비정상적인 트랜스티레틴 유전자를CRISP로 CRISPR 유전자 가위로 절단해 변형 단백질 생산을 줄이도록 설계된 유전자 편집 치료제입니다. 엑사셀이 환자로부터 줄기세포를 꺼낸 후 타깃 유전자를 절단하는 엑스비보(ex vivo) 방식이라면, 인텔리아는 유전자 치료제를 직접 환자의 몸에 투여하는 인비보(in vivo)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FDA는 유전자 편집 치료제에 대해 지금까지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유전자를 절단하거나 편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프 타깃은 환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입니다. 이번 엑사셀의 신약 승인 과정에서 자문단에게 예상치 못한 오프 타깃 리스크에 대한 점검을 의뢰한 것도 FDA의 신중한 행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많은 유전자 돌연변이 질환은 환자의 수명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립니다. 질병의 원인인 타깃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절단하거나, 유전자 서열을 교체하는 혁신적인 유전자 편집 기술이 돌연변이 질환의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엑사셀은 FDA 신약 승인 후에도 계속해서 환자의 오프 타깃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해 안전성을 보강해야 하지만, 신약으로 승인됐다는 건 CRISPR 기반 유전자 치료제가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치료하는 하나의 플랫폼 기술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엑사셀에 대한 FDA 자문단의 긍정적인 의견 발표가 있었던 지난달 31일, 비만치료제로 기세를 올리고 있는 빅파마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유전자 염기서열 편집 치료제 개발 기업 빔(Beam Therapeutics)이 버브(Verve)과 함께 개발 중인 3개의 물질을 6억달러(약 7800억원) 규모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는 유전자 편집 치료제 개발 경쟁의 본격 진입을 예고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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