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수요 둔화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 여전히 비싼 가격, 충분하지 않은 충전 인프라 등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소비자 구매력이 약해지면서 전기차를 포함한 자동차시장 전체가 ‘피크 아웃’에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전기차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는 올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이 1377만 대에 그칠 것이라는 수정 전망을 최근 내놨다. 연초 1430만 대에서 두 차례나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수요 둔화가 현실화하자 완성차 업체들은 일제히 사업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만들수록 적자인 전기차 생산과 투자를 줄여 우선 생존하고 보자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미국 1위인 제너럴모터스(GM)는 미시간주에 40억달러를 들여 건립 중인 전기트럭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주력 전기트럭 F-150 생산 축소에 나선 포드는 계획한 전기차 투자액 중 120억달러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로 유일하게 이익을 내는 테슬라도 멕시코 기가팩토리 프로젝트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3위 완성차 기업 현대자동차·기아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기존 전략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도 계획대로 내년 하반기 가동하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기아는 코로나19 시기에도 경쟁사들과 달리 생산을 크게 줄이지 않고 신차 개발과 전기차 전환에 과감하게 나섰고,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약진하고 있다. 미국에선 올 3분기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이 10%에 육박했다. 판매량 상위 5개사 중 현대차보다 전기차 비중이 높은 곳은 없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중장기적인 시장 전망까지 어두운 건 아니다. 현대차는 위기 때마다 퀀텀 점프했다. 세계 10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5위로, 코로나를 겪으며 3위로 성장했다.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현대차·기아가 이번 위기를 시장 점유율 확대의 기회로 삼아 다시 한번 도약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