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간의 외교적 갈등은 이전보다 더 커진 상황이고, 삼성, 현대차를 비롯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어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한국 무역의 20%를 차지하는 14억 인구의 중국 시장은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 기업과 디자인 기업들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에 이번 칼럼에서는 2017년부터 3년 동안 중국 상해를 거점으로 중국 전역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했던 필자의 중국 시장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1. CHINA RED와 문화적 상대성

중국을 가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모든 공항과 기차역 외부에 도시 이름이 적힌 붉은색(차이나 레드)의 대형 싸인물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밤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 싸인물을 보며 약간의 위압감과 더불어 묘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기도 한다. 필자도 중국 정착 초기에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이런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되었다. 차이나 레드는 중국을 상징하는 색깔로 명절에는 홍빠오(붉은색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줄 정도로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색깔이다. 또한,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도 차이나 레드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글로벌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도 중국의 오성홍기를 모티브로 한 12만 5천불(한화 약 1.7억)의 버킨백을 출시하여 중국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Credit: Julia Yeo
Credit: Julia Yeo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던 추억의 브랜드 보이 런던(BOY LONDON)이 중국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도 화려하고 강렬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문화적 성향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중국의 부동산 개발회사의 회장에게 낮은 채도의 파스텔톤의 디자인 시안을 가지고 갔다가 외관이 공장같이 남루하다는 의견을 듣고서, 문화적 충격과 함께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큰 교훈을 얻기도 한적이 있다.
Credit: Boy London
Credit: Boy London

2. 디자인 용역 서비스의 한계

필자가 중국에 진출했던 2016년에서 2017년에는 중국 기업들의 한국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 기술및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컸던 시기로 몇몇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현지 지사를 설립하고 20~30명 정도의 인력 파견까지 하기도 했다. 실제,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현지 기업보다 3배 높은 단가를 받기도 했고, 치열한 한국 경쟁 시장의 단가보다 더 높은 단가를 받다 보니, 많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하나의 돌파구로 생각하고 진출했던 시기였다. 실제 필자의 회사도 동일한 업무에 한국 시장보다 2배의 높은 가격을 받았었고, 중국 고객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결과가 어떤지 보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모든 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기업들의 급속한 성장과 발전으로 인해 중국 내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경쟁력을 상실해 갈 수 밖에 없었고, 많은 기업들이 이전과 같은 높은 비용을 받지 못하면서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가격적 요인 이외에 중국의 문화에 대한 부족으로 인해 필자는 중국 내 프로젝트 진행 시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일례로, 용을 테마로 한 미디어 파사드를 제작할 당시, 중국인이 생각하는 용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쳤었고, 심지어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용이 그려진 동양화를 전달받기도 하였다. 이처럼 문화적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디자인 용역 서비스의 경우, 한국 기업으로서의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하였고, 용역 서비스가 아닌 고유의 IP를 통한 중국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Credit: 디스트릭트 코리아
Credit: 디스트릭트 코리아
Credit: 디스트릭트 코리아
Credit: 디스트릭트 코리아

3. IP 경쟁력과 현지화

중국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한국 상품 및 IP에 대한 수요가 컸을 때, 중국 시장을 타켓으로 한 현지에 특화된 상품들이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에도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인 멤버가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필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좋은 말로 우리 나라 특유의 유연함을 무기로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빠르게 IP 현지화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경쟁력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필자는 일본 IP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많은 중국기업들이 일본 IP기업의 엄격한 가이드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 높은 중국 기업들의 IP와 글로벌 경쟁력과 높은 인지도를 가진 해외 IP들 사이에서 일종의 샌드위치 신세가 되면서 많은 IP기업들이 현지화보다는 IP의 근본적인 경쟁력과 매력 자체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수많은 아저씨들이 콘서트 표를 구해 달라는 블랙핑크에 중국인 멤버가 있지는 않지 않는가.

필자가 속한 디스트릭트 또한 아르떼 뮤지엄의 중국 내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현지화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고민하고 반영하고 있으나, IP의 기본적인 컨셉과 가이드는 유지해 나가면서 IP 자체의 경쟁력과 매력으로 시장에 어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중국向이라는 단어 자체가 무의미해진 시대가 되었다.
아르떼뮤지엄 청두
아르떼뮤지엄 청두

4. 발상의 전환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희차(HEYTEA)라는 브랜드를 중국에서 직접 경험했던 필자는 올 초에 한국의 한 디저트 카페를 보고 희차가 들어온 줄 알고 깜짝 놀랬던 경험이 있다. 또한, 학생들끼리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게 유행이 되고 탕후루가 국정감사에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콘텐츠 및 디자인 업계의 일방적인 IP의 수출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이제는 소비자를 매혹하기 위한 공정한 경쟁의 시기이며, 콘텐츠의 근본적인 펀더멘탈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에, 글로벌 보편성과 한국적 지역성 사이에서 길을 찾는다면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옆에 있는 14억 인구의 시장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에르메스가 새빨간 버킨백에 5개의 노란 별을 새겨넣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