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판 1] 렘브란트반 레인,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1632
이미지 출처 Fine Art Images/Heritage Images/Getty Images
[도판 1] 렘브란트반 레인,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1632 이미지 출처 Fine Art Images/Heritage Images/Getty Images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바로크 화가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단체 초상화 중 하나일 것이다. 네덜란드 라이덴 출신의 렘브란트가 1631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화가로 정착했을 때, 이 외부 출신 신인화가에게 첫 해 내내 단 세 개의 초상화 수주만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1632년 외과의사 길드의 부탁을 받아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를 그리게 된다. 니콜라스 튤프는 라이덴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축농증 치료를 위해 배액술을 그리고 경막외출혈 치료를 위한 천두술을 제안한 최초의 외과의사 중 하나로, 1628년 외과의 길드 장이 되었다. 또한 차후에는 정치적으로도 두각을 드러내 1653년부터 3회에 걸쳐 암스테르담 시장직을 맡은 인물이기도 하다. 암스테르담 외과의 길드는 1555년부터 매년 처형당한 죄수의 시신으로 공개적인 해부학 수업을 진행했다. 한동안 이 공개 해부학 강의에 참석한 길드원들이 함께 단체 초상화를 수주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 이 시기 다양한 화가들이 외과의 길드의 초상화를 그린 것이 현재 최소 아홉 점 이상 남아있다. 이 중 렘브란트의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는 사실감 있는 표현력, 신선한 인물 배치 방식과 탁월한 심리적 묘사 등의 이유로 그를 당대 최고의 초상 화가로 자리잡게 해서, 향후 부유한 시민들과 헤이그의 왕실로부터 단체 초상화 요청이 물밀 듯 들어왔다고 한다. 이 그림의 어떤 점이 렘브란트를 당대 암스테르담 최고의 화가로 만들어준 것일까?

그가 그린 해부학 수업 장면은 길드원들을 그리기 위한 피상적인 소재가 아니라, 그림의 전경에서 핵심적 요소로 작용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단체 졸업사진처럼 열 맞춰 앉은 길드원들을 그리던 당시 단체 초상의 관습에서 벗어나 화면 좌측 절반에 수업에 집중하는 일곱 명의 외과의들을 그리고 우측 절반에 이 수업을 진행하는 튤프 박사를 배치한 뒤 그들 앞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해부 대상인 시신을 그려 넣어 수업의 내용과 인물들 모두에 고루 시선이 가도록 고안되었다. (도판1) 강의를 듣고 있는 외과의들의 시선은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관객을 마주하여 화면 안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신의 해부된 왼팔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화면의 우측에 놓인 해부학교재를 바라보는 것이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이 책이 해부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안드레스 바살리우스(Andreas Vesalius)의 <인체해부도(De Humani Corporis Fabrica)>(1543)일 것으로 추정한다. 관객은 화면 속 튤프 교수의 해부학 수업의 내용을 함께 참관하도록 초대받은 셈이다.

그런데 막상 시신의 해부가 이루어진 팔을 보면 어딘가 어색하단 느낌을 받게 된다. 이는 일반인들과 해부학적으로 훈련된 눈을 가진 사람 모두가 갖는 생각이다. 우선 그 어색함은 원근법이 잘 맞지 않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보는 이에게 가까운 시신의 오른팔보다 해부된 왼팔이 더 크게 그려진 데다 왼팔의 각도가 나머지 신체와 달리 뒤틀려 위로 올라간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이미 해부된 팔 혹은 해부학 교재의 팔을 보고 그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림을 엑스레이 촬영해보니 원래는 왼팔을 잘려 나가 뭉뚝하게 그렸던 것 위에 지금의 이미지를 덧칠했음이 드러난다. 다른 한 편, 이 그림은 많은 의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는데 그 이유는 해부학적 오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일군의 네덜란드 학자들이 상완을 해부해 이 그림의 오류를 밝히는 논문을 작성하기까지 했다.[1] 어떤 문제들이 제기되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 팔꿈치와 손목 사이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도판 2) 팔꿈치의 관절은 복합 관절이고, 위팔뼈인 상완골(humerus), 척골(ulnar), 요골(radius) 세가지로 구성되는데 요골은 바깥 팔꿈치에서 엄지방향으로 향하는 뼈이며 척골은 안쪽 팔꿈치에서 새끼손가락 방향으로 향하는 뼈이다. 뼈와 뼈가 맞닿는 곳에는 관절이 있고 각 관절들은 관절낭으로 감싼 형태를 취하며, 외측에는 인대가 있어서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다. 인대처럼 근육들도 관절을 움직이게 하며 관절의 과도한 움직임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바깥팔꿈치(요골)에는 팔꿈치, 손목, 손가락을 신전시키는 근육들이 모여서 붙고 안쪽 팔꿈치(척골)에는 팔꿈치, 손목, 손가락을 굴곡시키는 근육들이 붙어있다. 다양한 근육들에 의해서 팔을 펴거나 굽힐 수 있고 또한 손가락의 다양한 움직임이 구현되는 것이다.
[도판 2] 상완 해부도, 이미지 출처 네터의 해부학도감
[도판 2] 상완 해부도, 이미지 출처 네터의 해부학도감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림 속 튤프 교수는 손 근육의 기능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맥겸자를 이용해 시신 왼팔의 근육 힘살을 집어 올리고 있다. (도판3) 이때 더 먼 쪽의 힘줄을 보면 얕은손가락굽힘근(flexor digitorum superficialis, FDS: 손가락 손목을 굴곡 시키는 역할을 함)이 손가락의 가운데 지골(phalanges)에 이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얕은손가락굽힘근은 손의 중간마디 뼈에 붙기 전에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는 깊은손가락굽힘근(Flexor digitorum profundus muscle, FDP) 주변에서 명확하게 관찰된다. 일부 의학자들은 렘브란트가 팔꿈치의 내측상관절융기(medial epicondyle)에 있어야 할 근육 발단(muscle belly)을 외측상관절융기(lateral epicondyle)에 위치한 것으로 잘못 그렸다 주장한다. 이에 맞서 튤프 교수가 손가락 가운데 마디(PIP joint)를 굽힐 때의 근육의 효과를 보이기 위해 이 근육 발단을 이미 박리한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튤프가 겸자로 들고 있는 부위의 중앙 뒤쪽으로 위치한 흰 섬유들로 보건대 이미 연결상태를 해제해 박리한 것으로 보는 것인데, 이 경우 해당 왼팔은 따로 잘린 후 해부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며 이에 따라 조금 비틀려보이는 원근법도 설명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도판 3]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중 해부된 팔 부분 확대
[도판 3] <튤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중 해부된 팔 부분 확대
필자들은 렘브란트 그림 속 해부학적 오류로 보이는 지점들이 작가의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우선 의학적으로는 튤프 교수는 얕은손가락굽힘근(superficial flexor muscle)의 작용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느라 전완의 구조를 박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고, 예술과 후원의 관계 차원에서 봤을 때, 해부학에 해박한 외과의들이 수주한 작품의 결과에 작가의 오류를 허용했을 리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튤프 교수가 얕은손가락굽힘근의 작용을 보여주는 중이라는 것은 그의 왼손의 모양을 통해 재확인된다. 이 시대 플랑드르 지방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연설용 손자세를 크게 벗어나, 왼 손목을 완전히 젖히고 중수지관절(metacarpophalangeal joints)은 바로 편 상태에서 손가락 가운데 마디(PIP 관절)를 구부리고 있다. 튤프 교수 본인이 이 왼손 자세를 취할 때 시신의 해부된 팔에서 근육 발단을 집어 올리며 같은 행동이 일어나게 시연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튤프 바로 오른편의 외과의가 자신의 왼손으로 같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 그 오른편 사람이 해부된 팔을 응시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앞서, 튤프 교수가 해부학 수업을 진행하며 펼쳐 둔 교재가 베살리우스의 것으로 추정된다 했다. 안드레스 베살리우스(1513-64)는 1543년 <인체해부도(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출판했는데 총 7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300여개의 상세한 일러스트레이션이 포함된,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해부학 교과서일 것이다. 이 책의 속표지에는 베살리우스 본인의 초상화가 목판화로 새겨져 있는데, 이때 그의 손에는 해부된 전완과 손이 들려있다. (도판4) 우리의 시선을 끄는 부분은 그가 오른손에 박리된 얕은손가락굽힘근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렘브란트의 명화 속 작가의 실수로 치부하던 것들은 실은 작가 자신의 의도, 더 나아가 작품을 수주한 후원인의 의도를 파악한 작가의 장치라고 읽어볼 수 있겠다. 튤프 교수는 자신의 암스테르담 내에서의 해부학 전문가로서의 입지가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베살리우스의 계승자와도 같다거나 혹은 그에 필적함을 드러내는 이 표현에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거금을 들여 그리는 길드 집단 초상을 완불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도판 4]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도> 속표지의 작가 초상판화, 1542. 이미지 출처: Science Photo Library/GV-Press
[도판 4]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인체해부도> 속표지의 작가 초상판화, 1542. 이미지 출처: Science Photo Library/GV-Press
[1] IJpma FF, van de Graaf RC, Nicolai JP et al. The anatomy lesson of Dr Nicolaes Tulp by Rembrandt (1632): a comparison of the painting with a dissected left forearm of a Dutch male cadaver. J Hand Surg 2006 (Am); 31: 882 –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