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 소재로 못 올랐던 '엘렉트라' 韓 초연···폭발적 가창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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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3번째 메인 공연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극장 제작
극장장 카르탈로프의 창의적 무대 연출 신선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극장 제작
극장장 카르탈로프의 창의적 무대 연출 신선
그리스 미케네 왕가의 아가멤논 궁전. 10년 만에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남편 아가멤논을 정부(情夫)인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무참히 살해한 클리템네스트라는 자신의 두 딸이자 공주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를 하녀와 다름없이 하찮게 취급한다.
오스트리아 대문호 휴고 본 호프만스탈이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원작을 각색한 대본에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입힌 오페라 ’엘렉트라‘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미쳐 날뛰는 엘렉트라를 하녀들이 비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세 번째 메인 오페라로 지난 20~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플라멘 카르탈로프 연출의 ’엘렉트라‘는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첫 장면부터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무대 한 편에서 하녀들이 엘렉트라를 비난하고 헐뜯는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선 대형 가위를 든 엘렉트라가 제정신이 아닌 듯 침대 위에 서서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다. 음악과 가사에 맞게 입체적으로 무대를 시각화한 독특한 연출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엘렉트라가 엉클어진 단발의 모습으로 등장해 유명한 모놀로그(독백 조의 아리아)인 '혼자, 나는 혼자예요, 아버지'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세계 오페라사에서 손꼽히는 명콤비인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처음으로 합작해 190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110분짜리 단막 오페라다. 문학적으로 압축된 구성과 시적 가사, 불협화음 같은 무조 음악과 아름다운 선율의 조성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한 곡 등으로 인해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과 페스티벌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2020년 100주년을 맞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도 ‘간판 공연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친모 살해’라는 비윤리적 소재와 다양한 음역과 색깔의 성악가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캐스팅,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등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상연되지 못했었다.
이번 ‘엘렉트라’ 한국 초연은 연출가 카르탈로프가 극장장을 맡고 있는 130여년 전통의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의 합작으로 성사됐다. 카르탈로프는 지난해 소피아에서 초연했을 당시 주요 배역과 제작진과 함께 내한했고,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선 상주 악단인 디오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고, 일부 조역을 맡은 한국인 성악가들을 뽑았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극이 진행되는 아가멤논 궁전 내부는 반투명한 비닐벽으로 공간이 구분되는 회전 무대로 구현됐다. 첫 장면부터 이 무대가 회전하면서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속성을 살린다.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동료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인 아이기스토스를 창으로 살해하는 액션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전까지 온전했던 비닐벽들도 창들로 인해 여기저기 뚫려 있다.
소포클레스의 원작은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오레스테스보다 타이틀 롤인 엘렉트라와 동생 크리소테미스, 이들의 친엄마 클리템네스트라의 비중이 커서 연극사상 ‘최초의 여성극’으로 불린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극 후반부에 오레스테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세 여성이 극을 이끈다.
첫날(20일) 공연에서는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성악가들인 소프라노 릴리야 케하요바(엘렉트라), 츠베티나 반달로프스카(크리소테미스), 메조소프라노 게르가나 루세코바(클리템네스트라)가 출연해 깊이 있는 내면 연기와 함께 각 배역에 맞는 폭발적인 가창을 극적으로 들려줬다.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국 지휘자 에반-알렉시스 크리스트가 이끈 디오오케스트라는 무난한 연주로 극과 가창을 뒷받침했다. 다만 오케스트라 피트 크기 등을 감안해 최대 130인조까지 구성할 수 있는 악단 규모를 ‘엘렉트라‘를 연주할 수 있는 최소 버전인 70인조로 편성해 이 작품에 기대했던 슈트라우스 특유의 폭발적인 음량을 듣고자 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올해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엘렉트라‘ 등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축제를 주관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정갑균 관장은 “앞으로도 베르디 등 친숙한 작품과 함께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슈트라우스의 후기작 등 국내에선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오스트리아 대문호 휴고 본 호프만스탈이 고대 그리스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원작을 각색한 대본에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입힌 오페라 ’엘렉트라‘는 엄마에 대한 분노로 미쳐 날뛰는 엘렉트라를 하녀들이 비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세 번째 메인 오페라로 지난 20~21일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플라멘 카르탈로프 연출의 ’엘렉트라‘는 다소 정적일 수 있는 첫 장면부터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무대 한 편에서 하녀들이 엘렉트라를 비난하고 헐뜯는 노래를 부른다. 동시에 다른 한 편에선 대형 가위를 든 엘렉트라가 제정신이 아닌 듯 침대 위에 서서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마구 자른다. 음악과 가사에 맞게 입체적으로 무대를 시각화한 독특한 연출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엘렉트라가 엉클어진 단발의 모습으로 등장해 유명한 모놀로그(독백 조의 아리아)인 '혼자, 나는 혼자예요, 아버지'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세계 오페라사에서 손꼽히는 명콤비인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처음으로 합작해 190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110분짜리 단막 오페라다. 문학적으로 압축된 구성과 시적 가사, 불협화음 같은 무조 음악과 아름다운 선율의 조성 음악을 절묘하게 배치한 곡 등으로 인해 세계 주요 오페라극장과 페스티벌의 핵심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2020년 100주년을 맞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도 ‘간판 공연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친모 살해’라는 비윤리적 소재와 다양한 음역과 색깔의 성악가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캐스팅,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등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상연되지 못했었다.
이번 ‘엘렉트라’ 한국 초연은 연출가 카르탈로프가 극장장을 맡고 있는 130여년 전통의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과 대구오페라하우스의 합작으로 성사됐다. 카르탈로프는 지난해 소피아에서 초연했을 당시 주요 배역과 제작진과 함께 내한했고,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선 상주 악단인 디오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고, 일부 조역을 맡은 한국인 성악가들을 뽑았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였다. 극이 진행되는 아가멤논 궁전 내부는 반투명한 비닐벽으로 공간이 구분되는 회전 무대로 구현됐다. 첫 장면부터 이 무대가 회전하면서 극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속성을 살린다.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동료와 함께 아버지의 원수인 아이기스토스를 창으로 살해하는 액션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전까지 온전했던 비닐벽들도 창들로 인해 여기저기 뚫려 있다.
소포클레스의 원작은 존속살해를 저지르는 오레스테스보다 타이틀 롤인 엘렉트라와 동생 크리소테미스, 이들의 친엄마 클리템네스트라의 비중이 커서 연극사상 ‘최초의 여성극’으로 불린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극 후반부에 오레스테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세 여성이 극을 이끈다.
첫날(20일) 공연에서는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성악가들인 소프라노 릴리야 케하요바(엘렉트라), 츠베티나 반달로프스카(크리소테미스), 메조소프라노 게르가나 루세코바(클리템네스트라)가 출연해 깊이 있는 내면 연기와 함께 각 배역에 맞는 폭발적인 가창을 극적으로 들려줬다.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국 지휘자 에반-알렉시스 크리스트가 이끈 디오오케스트라는 무난한 연주로 극과 가창을 뒷받침했다. 다만 오케스트라 피트 크기 등을 감안해 최대 130인조까지 구성할 수 있는 악단 규모를 ‘엘렉트라‘를 연주할 수 있는 최소 버전인 70인조로 편성해 이 작품에 기대했던 슈트라우스 특유의 폭발적인 음량을 듣고자 했다면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지난해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올해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엘렉트라‘ 등 그동안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축제를 주관하는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정갑균 관장은 “앞으로도 베르디 등 친숙한 작품과 함께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슈트라우스의 후기작 등 국내에선 자주 연주되지 않지만,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