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로프 "운명 직접 결정하려는 북한 지지"…'핵보유국 북한' 용인 취지
러 외무 "한반도 협상 지지"…'북핵 불가역성' 우회 인정 우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 협상'과 '북한 자주권'을 지지한다고 발언하면서 결국 북핵을 기정사실로 취급하려는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과 러시아 매체 보도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19일 평양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회담한 뒤 단독 기자회견에 나서서 "전제 조건 없이 한반도의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협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 논의를 위한 협상은 러시아가 한반도 사안에서 해결사 내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줄곧 고수해 온 기본 입장에 해당한다.

다자적 안보 협의체 등을 구축해 남북 갈등 등을 관리해 나가자는 제안이다.

한반도 사안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평화에 관심을 가지고 제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외교적 쇼맨십'이기도 하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과 함께 평화를 부르짖는 이면에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상황을 동시에 맞닥뜨린 미국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저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개의 전장으로 인해 미국의 국제질서 관리 역량이 제약받는 상황에서 북러 무기거래와 군사협력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들이밀어 미국의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한편으로 대외적으로는 평화를 외친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러의 내부 전략적 의도는 미국을 견제하고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한반도 협상 언급은 이중적 면모를 지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현 상태에서의 한반도 평화 협상은 곧 북한이 개발, 보유, 완성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핵무기를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라브로프 장관은 북핵을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는 문제를 다루자는 취지의 평화 협상을 제안함으로써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는 일종의 핵 군축 차원의 협상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 위원은 "북한 핵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가운데 협상해야 한다는 의미를 깔고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북한 핵무기 고도화의 불가역성에 쐐기를 박아주는 교묘한 외교적 형식"이라고 해석했다.

러 외무 "한반도 협상 지지"…'북핵 불가역성' 우회 인정 우려
라브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는 자국의 독립과 스스로의 운명과 발전 노선을 직접 결정하는 권리를 수호하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영도 하의 북한 노력에 전적인 연대와 지지를 표시한다"라고 했다.

이 발언 또한 북한 핵을 용인하는 취지의 평화 협상 제안과 맞물려 '핵보유국 북한'을 인정하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은 핵 개발 사유로 '미국의 핵 위협'을 들면서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핵을 추구했다고 강변해왔고, 러시아는 이를 북한 자주권 차원의 사안으로 수용했음을 라브로프 장관을 통해 밝힌 것이다.

라브로프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핵보유국 북한에 대한 완곡한 지지 선언이며,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원하는 점 등을 포함한 현재의 북러 관계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북한 핵 보유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주기를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