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마포아트센터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마포아트센터
광역시·도가 아닌 기초자치단체가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팔을 걷어붙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안 그래도 한푼이 아쉬운 살림살이에서 목돈을 떼어내 공연에 써야하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무대를 열어도 주민 호응이 대중문화만큼 높은 것도 아니니, 기초자치단체 입장에서 클래식 음악은 그리 '가성비' 높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래서 서울 25개 자치구 대부분은 가요, 뮤지컬, 마술, 연극, 발레 등 클래식보다 '쉬운' 공연에 무대를 주로 내준다. 단 한 곳, 마포구만 빼고. 마포구 산하 마포문화재단은 올해로 8년째 클래식 음악축제인 'M 클래식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마포문화재단은 4개월(9~12월) 동안 진행하는 이번 축제를 위해 오케스트라까지 결성했다. 기초자치단체가 축제용 악단을 만든 건 마포구가 처음이다.

그리고 그 첫 무대가 지난 1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M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사령탑은 창원시향 상임 지휘자인 김건(42)이 맡았다. 악단 중에는 서울시향, 부천시향 등 국내 주요 교향악단 단원들도 있었다. 이날 협연은 부조니 콩쿠르 준우승과 현대음악상을 받은 피아니스트 김도현(29)이 함께했다. 김도현은 마포아트센터가 선정한 첫 상주 아티스트다.

M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서곡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신나게 돌진하는 듯한 관악 파트와 귀를 간지럽히는 현악 파트의 트레몰로(음을 규칙적으로 반복)로 주의를 끌더니 이내 누구나 아는 '캉캉 춤' 파트가 등장하며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 마포아트센터 제공
짧은 예열을 마친 뒤 하이라이트가 이어졌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21살의 프로코피예프가 작정하고 난해하게 만든 곡이다. 전위적일 뿐 아니라 테크닉적으로도 어려운 곡으로 유명하다. 이 곡을 처음 무대에서 연주했을 때 진보주의 음악 애호가들은 환호했지만, 보수적인 청중들은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어둑하고 오묘한 주제 선율이 시작을 알렸다. 김도현은 자유롭게 음형을 펼쳐내는 가운데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로 중심을 잡았다. 한층에서는 음이 넓게 펼쳐지며 광활한 느낌을 자아냈고, 다른 층에서는 응축된 터치로 주제 선율이나 주요 화음을 선명히 부각했다. 긴 카덴차(협주곡에서 협연자의 기량을 뽐내는 독주 부분)에서는 빠른 템포의 고난도 스케일과 불협화음이 어우러지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쉼 없이 달리는 2악장, 거인의 발걸음처럼 쿵쾅거리며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자아내는 3악장, 혼란스럽고 광기 어린 4악장까지 마치자 그의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김도현은 이 난해한 작품을 각 잡힌 수트처럼 군더더기 없이 소화했다. 팔과 어깨, 손목의 반동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터치가 인상적이었다. 주먹으로 내리찍으며 직선적인 소리를 내더니, 어느 순간 건반 위를 스치듯 어루만지는 터치로 묘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앙코르곡으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급격히 전환했다. 직선적이고 타악기적인 터치가 인상적이었던 프로코피예프는 사라지고, 감미로운 선율과 우아한 터치의 드뷔시가 눈 앞에 있었다.

2부에서는 M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을 연주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중 하나다. 승리로 끝나는 베토벤의 운명과 달리 이 곡은 체념의 정서가 짙다. 그만큼 차이콥스키의 애수와 열정이 잘 묻어나는 곡으로 꼽힌다.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김건. 마포아트센터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김건. 마포아트센터
지휘자 김건은 활기차고 비장한 음향으로 금관 파트의 팡파르를 시작했다. 2악장에서는 다소 정직한 느낌이 있는 듯했지만 씁쓸하면서 감미로운 오보에의 선율을 두드러지게 살렸다. 현악 파트의 피치카토(현을 튕기는 주법)로 진행되는 3악장을 지나 귀를 쩌렁쩌렁 울리게 음량으로 고조되는 4악장까지 숨 가쁘게 달리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정식 악단이 아닌 만큼 완벽한 호흡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앙상블이 틀어지기도 했고, 소리의 세밀함이 부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단원들이 뿜어내는 생생하고 열정적인 연주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이날 청중들의 밝은 표정에서, 마포문화재단이 왜 가성비 떨어지는 클래식 음악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