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현철 첫 장편 연출…세월호 참사 앞둔 두 여고생 사랑 그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사랑 이야기…영화 '너와 나'
세미(박혜수 분)는 까르르 웃다가도 친구들이 자기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금세 토라지는 여고생이다.

그의 감정은 절친한 친구 하은(김시은) 앞에서 유독 더 널뛴다.

하은이 이어폰을 콧구멍에 넣으며 장난칠 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가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눈물이 터져 나온다.

세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세미는 하은을 사랑한다.

하지만 진심을 전할 수 없어 답답함만 쌓여간다.

하은에 대한 서운함은 커져 원망이 되고 이내 성도 난다.

세미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하은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솔직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배우 조현철이 연출한 첫 장편 영화 '너와 나'는 하은을 짝사랑하는 세미의 시선을 따라간다.

10대 여자 마음속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여고생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렸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설렘만을 주고 끝내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줬다가 가장 아픈 비극을 들추며 설렘을 도로 빼앗아 간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사랑 이야기…영화 '너와 나'
묘한 불길함은 극 초반부터 움튼다.

영화는 수학여행 전날 악몽을 꾼 세미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교실 책상에 엎드린 채 설핏 잠이 든 세미는 자기도 모르게 훌쩍거리며 깬다.

괘종시계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을러대듯 째깍거린다.

그가 조퇴 후 달려가 만난 사람은 다리를 다쳐 입원 중인 하은이다.

하은이 죽은 것 같은 꿈을 꾼 세미는 그를 혼자 남겨두는 것이 불안해 수학여행에 같이 가자고 조른다.

하은은 다친 발을 내밀며 무리라고 해보지만, 세미의 고집을 이길 수 없어 결국 급하게 수학여행 비용을 마련하기로 한다.

하은은 캠코더를 중고 시장에 내놓으면서도 영 내키지 않는 눈치다.

하은과 함께 있고 싶은 세미는 서럽기만 하다.

또다시 마음과는 어긋나는 말로 하은은 물론 자신에게도 상처를 준다.

수학여행 가기 전엔 꼭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사랑 고백은 자꾸만 유예된다.

두 인물의 감정이 뜨거워질수록 긴장감도 팽팽해진다.

이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지 아니면 깨지고 말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다.

따스한 봄날, 고등학생, 안산, 수학여행, 제주도…. 영화가 하나씩 던지는 힌트가 결국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해서다.

세미와 하은은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두 사람 중 누구도 그날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들의 사랑은 풋풋하기보다는 절절하게 다가온다.

수학여행 길에 오르지 말라는 간절한 바람도 커진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사랑 이야기…영화 '너와 나'
이 영화에는 유독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뿌옇게 처리된 화면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그래서 세미와 하은이 겪는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환상인지, 아니면 저승에서의 일인지조차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세미가 꿈에서 봤다는 죽은 사람의 정체도 불분명하다.

풀밭에 쓰러져 있는 이는 세미도 됐다가 하은도 됐다가 한다.

세미는 꿈에서 잠시 하은이 되기도 한다.

하은의 몸으로 세미를 그리워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사랑 이야기를 통해 조현철 감독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잊혀가는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위로와 애도가 아닐까.

가장 아픈 비극을 잊지 말자는 당부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각인한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수학여행 전날 들떠 있는 아이들을 고루 비춘다.

친구들과 쇼핑하며 하하 호호 떠들기도 하고 운동장을 뛰놀거나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세미가 부모님과 티격태격했던 저녁 식사도 그에겐 앞으로 있을 수많은 평범한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너와 나'라는 영화 제목은 세미와 하은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둘을 지켜보는 우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너였을 수도, 나였을 수도 있는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10월 25일 개봉. 118분. 12세 이상 관람가.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는 사랑 이야기…영화 '너와 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