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림픽대로 행주대교 남단 인근에는 시설녹지와 강서습지가 있다.

이 일대는 강과 작은 풀숲이 있어 도시의 야생동물들이 살기 좋은 '천국' 같은 곳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이곳으로 오기 위해 도로를 건너다 수많은 동물이 찻길사고(로드킬)를 당하는 '블랙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작가 권도연은 2021년부터 카메라를 들고 천국과 블랙홀이 공존하는 이곳으로 향했다.

주로 오전 2∼4시 달빛이 비치는 시간, 강변과 풀숲, 도로에 모습을 드러내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주변 풍경과 함께 찍었다.

난지교의 도로에서는 길을 건너는 토끼를 만났고 김포대교와 가양대교, 아라한강갑문에는 삵이 살고 있었다.

행주대교 아래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수달의 모습도 포착됐다.

밤에 나타나는 서울의 야생동물들…권도연 페리지갤러리 사진전
이렇게 찍은 사진을 모은 '반짝반짝'전이 서울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풍경 사진의 개념으로 접근한 흑백 사진은 망원렌즈를 이용해 동물들을 클로즈업하는 대신 풍경 속에 숨어있는 듯 담았다.

배경이 되는 나무와 풀숲, 아파트, 다리, 난간, 도로 등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분위기를 풍긴다.

'반짝반짝' 작업은 2년 만인 올해 6월 끝났다.

한강과 아라뱃길을 유람선으로 잇는 이른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를 위해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강바닥에서 파낸 흙으로 숲은 며칠 만에 사라졌고 이곳에 나타나던 동물들도 사라졌다.

밤에 나타나는 서울의 야생동물들…권도연 페리지갤러리 사진전
작가는 은평뉴타운 재개발로 유기돼 북한산을 떠도는 들개들을 찍은 '북한산'과 어두운 저녁에 발견되는 야생 동물들을 따라다니며 찍은 '야간행' 연작 등 비슷한 작업을 계속해 왔다.

전시가 시작된 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거창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저 동물이 좋아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동물의 모습이 사회에서 밀려나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반짝반짝' 작업은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전시는 11월25일까지.
밤에 나타나는 서울의 야생동물들…권도연 페리지갤러리 사진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