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되진 않지만…드라마 주인공 나선 악인들, 매력 통할까

피카레스크 장르 잇달아…"'정의'보단 '처단'의 욕망 반영"

돈과 성공을 인생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욕망의 화신 금라희(황정음 분). 흑심을 품고 십여년 전에 버린 친딸 방다미(정라엘)를 찾아간다.

잃어버린 후 여태 찾아다닌 척,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고 사죄하는데, 방다미를 양부모에게서 떼어놓자마자 태도가 돌변한다.

친딸을 철저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며, 계획이 틀어져 화가 나자 살의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냅다 딸의 목을 조른다.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너 같은 건 낳지 말았어야 했어"라는 폭언도 퍼붓는다.

30일 방송가에 따르면 욕망에 사로잡힌 악인을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들이 속속 안방극장을 찾고 있다.

지난 15일 처음 방송된 SBS '7인의 탈출'은 피카레스크(악인들이 주인공인 작품) 장르를 표방한다.

이 드라마에서 금라희는 친딸을 버리더니 다시 데려와 학대하는 엄마고, 조폭 출신 민도혁(이준)은 돈만 주면 무고한 사람도 칼로 찌른다.

한모네(이유비)는 원조 교제를 하는 아이돌 지망생, 양진모(윤종훈)는 악덕 연예기획사 사장이다.

차주란(신은경), 고명지(조윤희), 남철우(조재윤) 역시 본인의 욕망에 굴복해 죄 없는 소녀를 벼랑 끝까지 내몬다.

'7인의 탈출'만큼은 아니지만, SBS '국민사형투표' 역시 정의와 욕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남부경찰청 광수대 소속 팀장 김무찬(박해진)은 '사건이 좀 된다' 싶으면 모조리 자기 걸로 만드는 특진의 달인이다.

단순히 남의 사건을 빼앗는 것을 넘어서, 증거까지 조작한다.

극 초중반까지는 악질범들을 대상으로 국민 사형투표를 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개탈'의 유력 용의자로 꼽히기도 했다.

앞서 박해진은 제작발표회에서 "김무찬은 정의롭지만, 악한 본성도 꿈틀꿈틀 드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김무찬은 경찰이지만, 법망을 피해 가는 '악질 범죄자들을 이렇게밖에 처단할 수 없나'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며 "선한 모습으로 남을지, 악한 모습으로 넘어갈 것인지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NA 토·일 특별기획 드라마 '악인전기'도 악인이 주인공이다.

생계형 변호사가 악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배우 신하균이 생면부지인 재소자에게 무작정 면회 신청을 해 일을 따내는 생계형 변호사 한동수 역을 맡았다.

제작진은 "신하균이 악인으로 변모하는 한동수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대사 한 마디, 숨소리 하나까지도 치밀하게 고민하고 계산해 연기에 임했다"고 귀띔했다.

악인들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지만, 사회 규범에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다음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으로 나섰을 때 입체적인 캐릭터 서사와 신선함이 나름의 재미를 더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 통쾌한 복수 과정에서 대리 만족을 전할 수 있다"며 "'정의'보다는 '처단'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망을 잘 파고든다면 오락적 재미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