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가 일하는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트레이더가 일하는 모습. /사진=AFP 연합뉴스
금리 인상으로 자본시장 내 유동성이 줄어들자 사모펀드(PEF) 업계에 대한 투자가 급감하고 있다. 신규 투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펀드 만기를 넘긴 채 운용만 하는 '좀비 펀드'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시장조사업체 프레킨을 인용해 올해 미국 내 사모펀드 업계의 투자금이 작년보다 28% 감소할 것이라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로 인해 신규 자금 조달에 실패한 사모펀드 운용사가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산 만료 시점을 넘긴 사모펀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프레킨에 따르면 2010년 이전에 결성된 사모펀드는 지난해까지 총 800억달러를 운용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신규 바이아웃 펀드를 결성하지 못한 운용사는 645개에 이른다. 신규 펀드를 결성하지 못한 채 기존 펀드만 운용하고 있는 '좀비 펀드'가 증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모펀드의 수명은 평균 12년을 밑돈다.

토드 밀러 제프리스파이낸셜 그룹 사모펀드 책임자는 "지난 5년간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지 않았다면 좀비 펀드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며 "사모펀드 운용사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펀드를 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좀비 펀드가 증가하자 펀드출자자(LP)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펀드 내 자산을 매각하라고 명령할 수 없어서다. 자산을 매각한 뒤 청산해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이를 강요할 수 없는 입장이다. 또 펀드 매니저를 LP 입맛대로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LP의 수익률만 떨어지고 있다.

블룸버그가 미국 내 주요 10개 퇴직연금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포트폴리오 총액에서 2009년 이전에 결성된 사모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에 달했다. 900여개 펀드에 총 68억달러가 묶여있다. 이 중 일부 펀드의 경우 결성 일자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년 가까이 자산을 매각하지 못한 채 운용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 업계에서 좀비펀드가 나타난 배경엔 자본시장 침체가 있다. 고강도 통화 긴축 정책으로 인해 유동성이 줄어들게 되자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출자도 감소했다. 차입 비용이 상승하게 되자 인수합병(M&A)이 위축돼 사모펀드가 보유한 자산도 매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규 자본을 조달하지 못한 운용사는 자산을 붙든 채 운용보수만 챙기는 현상이 확산했다.

홀콤베 그린 라자드 이사는 "M&A 시장과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하면서 사모펀드 운용사가 특정 자산을 시장에 매각하기 더 어려워졌다"며 "때문에 좀비 펀드는 더 증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좀비 펀드가 처음 나타난 시점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 운용사들이 LP가 제시한 출자 입찰에서 줄줄이 낙마하자 자본금 수혈이 끊겼다. 자본시장 침체로 인해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어서다. 결국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운용보수에 대한 중재에 나서며 일단락된 바 있다.

올해는 사모펀드 업계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자본시장이 냉각하자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운용사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검증되지 않은 운용사에 출자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연기금은 주로 대기업을 위주로 출자하고 소형 부티크 사모펀드는 외면했다. 출자 경쟁에서 승리한 대기업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운용자산(AUM) 규모가 1조달러를 넘어선 블랙스톤의 주가는 50% 가량 급등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