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등 국내 전기차업체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제네시스 GV70는 2021년 사우디에서 열린 ‘내셔널 오토 어워드’에서 베스트 럭셔리 크로스오버에 선정됐다.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 등 국내 전기차업체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제네시스 GV70는 2021년 사우디에서 열린 ‘내셔널 오토 어워드’에서 베스트 럭셔리 크로스오버에 선정됐다.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연은 반세기에 가깝다. 1976년 사우디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수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사우디는 현대차 중동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가 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준 사우디에서 도요타에 이어 현지 판매 2위를 달리고 있다.

조용하던 사우디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지난해 말 대만 폭스콘과 합작해 전기차업체 시어를 설립하고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테슬라도 사우디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내연기관차에 안주하다간 중동 시장 전체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기존 업계의 판단이다. 국내 완성차·부품·배터리·타이어 업체가 사우디 전기차 시장에 총진격하게 된 배경이다.

韓 “사우디 전기차 시장 잡아라”

"석유엔 미래 없다" 빈살만, 전기차에 올인
18일 업계에 따르면 시어가 올해 본격적으로 공장 건설을 시작하면서 국내 부품업체 상당수가 앞다퉈 현지 진출을 타진했다. 현대차그룹의 부품 계열사 현대케피코는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계약까지 따냈다. 2026년부터 전기차 제어기(VCU)와 전력 변환 부품(DC-DC컨버터)을 공급하기로 했다. 1차 수주 금액은 2500억원 규모로 협의 중인 제품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주액은 7000억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시어와 부품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배터리업계는 미국 전기차업체 루시드가 사우디에 짓는 공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지분 약 60%를 보유하고 있는 루시드는 연간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차 공장을 2024년까지 세울 계획이다. 루시드 전기차에 장착될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자사 원통형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루시드 에어를 국내에 처음 전시하기도 했다.

현대차도 반격에 나섰다. 중동 첫 생산기지를 사우디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현대차는 연초 사우디 산업광물자원부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현지에 반제품조립(CKD)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한국에서 전기차 반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면 현지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다음달 정의선 회장 등이 사우디를 방문한 자리에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타이어는 사우디에서 전기차 전용 타이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제품을 내놨다. 최근 현지 대기업 빈시혼을 통해 전기차 전용 타이어 아이온을 선보였다.

○빈살만 “네옴에는 전기차만 다닐 것”

사우디는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사업에 본격 투자하고 있다. 2030년까지 수도 리야드 내 자동차의 30% 이상을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했다. 5000억달러를 투자해 조성하는 신도시 네옴에선 아예 전기차만 다니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우디는 최근 배터리 광물 사업에도 직접 진출하고 있다. 지난 7월 국부펀드 등을 통해 글로벌 채굴업체 발레의 구리·니켈사업부 지분 13%를 34억달러에 인수했다. 리튬 정제시설 건설도 추진 중이다. 2030년까지 연 5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인 만큼 선제적으로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사우디가 전기차에 필요한 광물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며 테슬라를 설득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김일규/배성수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