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경제협력 문제 이야기할 필요"…회담에 산업·자원·교통 부처 수장 대동
북, 경제난극복 러시아에 기댄다…식량·유류에 노동자 파견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거의 사흘간 내리 열차를 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러 간 데는 러시아와 군사협력뿐 아니라 경제난을 타개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4년 5개월 만에 전격으로 이뤄진 북러 정상회담을 신호탄으로 양국 경제협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분명히 경제협력 문제, 인도주의 성격의 문제, 지역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러시아 부총리를 비롯해 산업, 교통, 자원 부처 수장이 일제히 회담에 동석한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회담에 참석한 러시아 대표단에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비롯해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통상부 장관, 마라트 후스눌린 부총리, 비탈리 사벨리에프 러시아 교통부 장관,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 등이 포함됐다.

북한에서는 경제를 총괄하는 오수용 노동당 경제부장이 김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고 있다.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식량·유류 문제는 물론 양국 '니즈'가 맞아떨어지는 북한 노동자 파견 문제, 양국을 연결하는 철도와 러시아의 나진항 이용 활성화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테이블 위에 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러시아의 탄약고를 채워주는 대가로 받아 챙길 분야로 가장 먼저 식량과 유류 공급 문제가 꼽힌다.

북한은 2020년 초 팬데믹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래 곡물이나 비료 등 수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식량 사정이 한층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정보도 전해지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불만과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식량 수급 안정화는 북한 당국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이런 절박함은 북한이 올해 달성해야 할 '12개 고지' 중 식량 증산을 제1 과제로 선정한 데서도 묻어난다.

오래전부터 밀 수출 1위 '곡물대국' 러시아의 도움을 받은 북한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러시아에 식량공급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을 공산이 크다.

아울러 북한은 이번 기회에 모든 경제활동의 기본인 '기름' 공급 확대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대북제재로 유류 수입 규모를 제한받는 터라 그간 불법 환적 등으로 유류 비축량을 확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현재 북한의 정제유 수입 한도를 연간 50만배럴로 정하고 있다.

이런 추측은 러시아가 최근 대북 정제유 공급량을 대폭 늘린 상황과도 연결된다.

지난해 12월 공식 재개된 러시아의 대북 정제유 수출 규모는 올 1월 4만4천배럴을 기록한 뒤로 줄곧 내리막을 걷다가 7월 대폭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5월과 6월 각각 2천593배럴과 2천305배럴을 기록했다가 7월에 1만933배럴로 4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북한 노동자 파견 확대도 앞순위 안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노동으로 외화벌이가 필요한 북한과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러시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분야다.

해외로 파견돼 일하는 북한 노동자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국경 개방에 따라 노동자 송환 압박을 받는 북한으로서는 외화벌이 수단이 타격을 받을 처지가 됐다.

러시아에는 극동 지역을 중심으로 수천 명 규모의 북한 노동자가 여전히 머무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개발에 힘쓰는 극동 지역에 인력이 가뜩이나 부족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청년층 징병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화한 상황이다.

싼값에 북한 인력을 더 데려오는 것이 러시아에도 이득이다.

이미 러시아는 전날 "필요하다면 우리는 북한 동무들과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고 밝혀 대북 유엔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고 시사한 바 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회담 직후에도 "러시아는 유엔과 안보리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는 러시아-북한 관계의 추가 발전에 방해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에서 건설을 책임지는 박훈 내각 부총리가 수행단에 포함된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 교통장관이 회담에 들어간 것은 양국이 물류·교통 분야에서도 교류를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북한 나진항-러시아 하산 철도를 통한 수송 확대 등을 위한 프로젝트도 정상회담 안건에 오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1년 북러 정상 합의에 따라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연해주 하산역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철도를 복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후 이 사업은 북러 양국에 더해 한국까지 참여하는 3자 사업으로 추진됐으나, 북한 핵실험에 따른 유엔·미국 제재로 2013년부터 중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