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안 섞이면 어때?… 2023년에 다시 보는 '가족의 탄생'
이쯤 되면 이들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사연이 몹시 궁금해진다. 특별한 사건 없이 이들이 어떻게 만나고 함께 하게 되었는지 사연을 따라가며 인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형철(엄태웅)이 5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불현듯 누나 미라(문소리)를 찾아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무려 20살 연상녀 무신(고두심)과 함께다. 현실주의자인 선경(공효진)은 ‘사랑밖에 난 몰라’인 엄마 매자(김혜옥)이 구질구질하고 싫다. 여자친구 채현(정유미)이 모두에게 사랑을 쏟는 바람에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은 애정결핍에 걸릴 지경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헤픈 거 나쁜 거야?”는 관객들에게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엔딩에서 탄생한 가족은 혼인으로도, 혈연으로도 엮여 있지 않다.
무려 17년 전 작품인데, 그 당시에도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가족에 대해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갔다’거나 하는 반응이 아니었다.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4인 정상 가족’의 신화에 지긋지긋함을 느끼던 관객들은 이 영화 속 가족과 같은 모습을 긍정하며 좀 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들어 이렇게 다채롭게 함께 사는 가족의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1인 가구는 늘어가고 연일 출산율의 심각성과 국가 존폐의 위기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이런 시기에 이 영화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17년이나 흘러 한국 사회의 다채로운 가족 상에 대한 제도적 지원과 문화적 인식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하면, 정말이지 아직은 멀었고, 변화는 몹시나 더딘 것 같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기도 아끼기도 하면서, 어찌 되었든 모여 산다. 지금보다 더 세상을 좁게 보고, 유연하지 못했던 대학생 때의 나는 이 영화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정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부디 이 보석 같은 영화를 놓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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