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베트남의 국익우선 '대나무 외교'
1955년부터 20년 이상 이어진 베트남전쟁의 상처는 깊고 처절했다. 민간인을 포함한 사망자는 미군 추산 약 120만 명, 베트남 정부 추산으로는 300만 명에 달했다. 미군 전사자 5만8000여 명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사이공 함락 이후 해외로 탈출한 남베트남 보트피플도 106만~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초강대국 미국 역시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고도 첫 ‘패전’의 불명예를 떠안은 전쟁이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베트남과 미국이 양국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이 그제 지난 10년간 유지해온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통상 몇 년씩 걸리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건너뛴 파격이다.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려는 미국이 공을 들인 결과지만, 베트남의 속내는 다른 듯하다.

남중국해를 끼고 인도차이나반도 동쪽 끝에 남북으로 길게 S자형으로 펼쳐진 베트남은 이웃 나라들과 숱한 전쟁을 치렀다. 한무제 때인 기원전 111년부터 1000년 이상 베트남을 지배한 중국과는 지금도 협력하며 대립하는 관계다.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과도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베트남은 서로 대립하기보다 실리 외교에 철저하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 편에서 함께 싸운 한국은 물론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과 이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베트남은 이런 외교적 유연성을 국익을 위한 ‘대나무 외교’라고 설명한다. 대나무 외교는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2016년 처음 제시한 용어로 그는 “대나무는 강력한 뿌리와 굳건한 줄기, 유연한 가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면서 국익을 도모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유연하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은 유지한 채 미국의 힘을 빌려 남중국해 영유권을 지키고, 무기는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식이다. 국익 앞에선 실리가 우선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