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권익보호기관 운영하겠다는 지자체 수요 없어"
인신매매방지법 국제사회에 내세웠는데…내년 예산은 반토막
한국이 올해부터 인신매매방지법을 시행해 인권 증진에 기여했다는 국제사회 평가를 받았지만, 인신매매방지 사업 관련 예산은 반토막 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여성가족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인신매매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은 2023년 본예산(5억2천400만원)에서 44.5% 감소한 2억9천100만원으로 편성됐다.

감액된 예산 중 가장 큰 부분은 지역 권익 보호기관 시범운영과 피해자지원 협업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자치단체 경상보조금 2억6천100만원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지자체가 없어, 이 예산은 올해 7월 말 기준 전액 불용될 것으로 여가부는 내다봤다.

올해 1월 시행된 인신매매방지법은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의 인신매매 예방, 피해자 보호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가부는 시·도 단위로 지역 권익 보호기관을 운영하기 위해 수요조사, 수행기관 공모를 했으나 지자체에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사업을 거절했다.

인신매매방지법은 성매매, 성 착취부터 노동력 착취와 장기 밀매까지를 모두 '인신매매 등'으로 보고 금지하는데, 일선 공무원들이 지역의 외국인 업소나 어선 등 착취가 발생하는 곳을 직접 방문해 실태를 파악하고 업주를 교육하는 업무가 너무 방대하고 난이도가 높다는 문제가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내년도에는 우선 여가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설치된 중앙피해자권익보호기관을 통해 지역 시민사회단체의 제보 및 피해자 상담을 접수해 피해자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내년에는 중앙권익보호기관에서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을 시범적으로 하고, 내후년에 지자체와 다시 협의해서 지역에서도 인신매매 피해자를 발굴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2023년 인신매매 보고서'에 따르면 인신매매 근절 노력에 대해 한국은 2년 연속 2등급을 받았다.

앞서 국무부는 작년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의 지위를 20년만에 처음으로 1등급에서 2등급으로 강등해 분류했다.

이후 지난 7월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UPR) 절차 마무리 회의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의 인신매매방지법 시행을 유의미한 인권 개선 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