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에 교통비 月 3만원"…중구가 씀씀이 큰 이유는
걷히는 세금 많지만 거주자는 12만명 남짓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 많지 않고
고령인구 많아 어르신 복지에 예산 비중 높여



서울의 '1번 자치구'는 종로구지만, 실제 서울의 가장 중심지를 꼽으라면 단연 중구다. 서울시청이 있고, 서울역이 있다. 숭례문(남대문)과 명동 등 전통적인 서울의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구다.
중구에 자리잡고 있는 숭례문. /중구청 페이스북
중구에 자리잡고 있는 숭례문. /중구청 페이스북
그래서 강남 등과 달리 중구의 역사를 헤아리자면 얘기가 꽤 길다. 중구청이 기록하는 '중구'의 독립적인 지위는 해방을 조금 앞둔 1943년이다. 앞서 1910년 조선총독부는 한성부를 경성부로 이름을 바꿔 경기도에 예속시켰는데 1943년 들어 '구(區)' 제도를 실시하려고 마음먹었다. 그해 4월1일 경성부 전역에 7개 사무소가 설치됐는데 현재의 중구에 '중앙사무소'가 배치됐다. 이어 6월10일 구 제도가 시작되면서 경성부 직할구역소로 '중구역소'가 생겼다.
"어르신에 교통비 月 3만원"…중구가 씀씀이 큰 이유는
서울시가 경기도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서울시가 된 것은 1946년 9월 28일 서울시 헌장이 생기면서부터다. 이때 중구도 '서울시 중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중구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1975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동구 일부(황학동, 흥인동, 신당동 등)와 서대문구 일부(서소문동, 정동, 순화동, 중림동, 만리동 등), 용산구(한남동) 일부를 각각 받아 관할구역이 확장됐다. 1988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하나의 자치구가 됐다.

구도심 거주자, 빠르게 고령화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중구의 큰 특징이다. 각종 행정시설은 물론, 기업과 상업시설이 모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언론사도 대부분 이곳에 있다. 우리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도 이곳에 그룹의 핵심역할을 두고 있다. (KB금융은 과거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했다.) 1일 유동인구 수는 1100만명에 달한다.

대신 주거지역의 기능은 약하다. 면적(9.96㎢)도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좁다. 인구도 많지 않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중구의 등록 거주자 수는 11만9809명이다. 수년째 12만명 언저리에 머물고 있고, 그나마 소폭 감소세다. 남성이 5만7970명, 여성이 6만1839명이다.
"어르신에 교통비 月 3만원"…중구가 씀씀이 큰 이유는
우리나라 인구가 전체적으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중구의 진행 속도는 특히 빠르다. 구도심이 많고 개발이 더딘 탓에 남아 있는 거주자는 대부분 고령인구다. 100세 이상이 23명이고 90대가 842명, 80대가 5431명, 70대가 1만283명 등이다. 70대 이상이 13.8%다. 중구청이 보여주는 인구 피라미드는 2000년까지만 해도 일하는 연령대(15~64세)가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고령층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르신 교통비 월 3만원 지급

거주자 수는 많지 않은 대신 기업과 상업시설에서 거둬들이는 세수는 적지 않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서 강남구, 서초구 다음으로 재정이 풍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중구다. 기준재정수요 충족도를 따져보면 97~98% 수준이다. 160%를 훌쩍 넘는 강남구와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서초구(99%)와 비슷한 편이다. 서울시에서 교부금을 조금 받기는 하나 미미한 수준이고 구 자체의 수입으로 구의 지출을 대부분 감당할 수 있는 편이다.

중구청이 공개한 2023년도 사업예산서(추경 미반영)에 따르면 중구의 올해 예산 규모는 모두 5756억원이다. 일반회계가 5251억원, 특별회계가 505억원 규모다. 예산 중에서 지방세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2162억원으로 37.6%를 차지하고 있다. 각종 사용료와 징수교부금 등 세외수입이 921억원으로 16.0%로 높은 편이다. 지방교부세는 132억원(2.3%), 조정교부금은 214억원(3.7%)으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 특별회계 비중이 다른 구와 비교해 높은 편인데 특히 주차장특별회계(503억원)의 규모가 큰 것이 도드라진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 혼잡도가 높고 업무적으로 방문하는 수요가 크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적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어르신에 교통비 月 3만원"…중구가 씀씀이 큰 이유는
인구가 많지 않은 만큼, 중구는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도 타 구에 비해 적은 편이다. 거주자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각종 복지 혜택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러한 중구의 재정적인 여건과 관련이 깊다. 특히 큰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 한 두 가지에 집중하기보다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작은 사업을 많이 진행하자는 것이 김길성 중구청장의 기조다.

홍정진 중구 예산팀장은 "어르신 중에서 경제적 여력이 안 되시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케어 사업을 하고 있다"며 "인구가 많은 타 구에서는 하기 어려 사업도 중구에서는 많이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양 더하기' 사업을 한다거나 목욕탕 시설을 갖춘 헬스케어 센터(7억2500만원 예산 반영)를 지어서 저렴한 가격에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어르신일자리 전담기관(중구시니어클럽) 설치에 2억원을 배정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지난 7월 65세 이상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월 3만원씩 교통비를 지급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한 대목이다. 중구는 이와 관련해 시스템 구축비로 5억7000만원을 편성해 놓았고, 추경예산에도 교통비 1개월분 5억원 편성이 예정돼 있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연간 90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인구가 50만명씩 되는 큰 구에서는 같은 사업을 해도 예산이 다섯 배는 들어갈 테니 하기 어려운 일이다.

홍 팀장은 "인구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출산 양육지원금도 첫째 아이 100만원부터 다섯째 이상의 아이는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등 확대하고 있다"며 "산후조리 비용으로 서울시와 별도로 1인당 100만원씩 주기로 하고 5억7000만원 예산을 잡아놨다"고 했다.

고도 제한 완화 등 도심 재개발 '노력'

김길성 청장은 최근 남산 고도 제한 완화를 통해 낙후된 구도심 지역의 재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중구 지역이 서울 노른자위에 있는데도 개발이 더디고 인구유입이 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고도 제한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 지역의 고도 제한 완화에 동감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6월 종전 12m와 20m로 일률적이던 남산 고도 제한을 12~40m로 세분화하는 내용의 신 고도지구 구상을 발표했다. 무조건 높이는 것은 아니고, 조망점별로 경관 시뮬레이션을 해 차등적용 하는 방식이다. 특히 약수역 일대 준주거지역 역세권을 20m에서 32~40m로 완화하기로 했다. 구기동과 평창동 일대도 조금씩 더 높일 수 있게 한다.
서울시의 고도지구 재정비안.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고도지구 재정비안. /서울시 제공
중구의 수입원 중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공영주차장 복합화도 역점사업이다. 청구공영주차장, 신당사거리공영주차장 등을 복합화해서 시설을 현대화하고 추가 수입원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아울러 오장동 등 도심부에 도시 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 수립 등도 진행 중이다.

'정동야행'등 중구의 특성을 살린 축제를 진행하고 대현산 배수지공원에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등 생활편의 시설을 만드는데도 예산이 많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중구청은 밝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