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정이 3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서연정이 3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다른 모든 프로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프로 골프도 승자만을 위한 잔치다.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장만큼도 안 나지만, 대접은 하늘과 땅 차이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막론하고, 프로로 뛰는 동안 한 번 이상 우승컵을 들어 올린 ‘챔피언’은 20%밖에 안 된다. 나머지 80%는 조연으로 뛰다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지난주까지 서연정(28)도 그런 ‘사라질 이름’ 중 하나였다. 동갑내기 고진영 함께 2014년 K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10년이 다 되도록 우승 한 번 못 해서다. 최고 성적은 준우승. 그것도 다섯 번이나 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충분하지만, 운이 없거나 기(氣)가 약한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2011년 한화클래식 2라운드에서 2억원 넘는 벤틀리 차량이 걸린 홀에서 홀인원을 했지만, 아마추어 신분이라 차 열쇠를 가져가지 못한 사연도 서연정에게 ‘운이 없다’는 이미지를 입히는 데 일조했다.

“나에게 포기는 없다”

서연정이 3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서연정이 3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KG레이디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KLPGA 제공
그런 서연정이 260번째 출전 대회 만에 온갖 불운을 털어내고 그린 재킷을 입었다. 서연정은 3일 경기 용인 써닝포인트CC(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KG 레이디스오픈(총상금 8억원) 최종 3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쳐 최종 합계 14언더파 202타를 기록했다. 동타를 이룬 노승희(22)와 연장에 들어갔고, 연장 첫 홀에서 파를 기록해 보기에 그친 노승희를 따돌리고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우승상금은 1억4400만원.

이로써 서연정은 KLPGA투어에서 가장 많은 대회를 치르고 첫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됐다. 종전 기록은 2019년 11월 ADT 캡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안송이(33)의 237개 대회였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서연정은 3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았다. 그러나 6번홀(파4)에서 티샷 실수로 공이 해저드에 빠졌고, 벌타 후 친 세 번째 샷마저 그린에 다다르지 못해 더블보기로 흔들렸다. 그사이 노승희가 7번홀(파4) 버디로 따라오면서 ‘첫 승 대결’이 벌어졌다. 노승희 역시 1부 투어 97개 대회 만에 첫 승에 도전하는 상황이었다.

10번홀(파4)에서 서연정이 버디를 잡자 노승희도 버디로 응수했다. 서연정이 13번홀(파4)과 14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낚자, 노승희도 14, 15번홀(파4) 연속 버디로 맞섰다.

“후배들에게 용기 주고 싶었다”

치열했던 우승 경쟁은 노승희의 미스 샷 한 번으로 끝났다. 18번홀(파5)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서연정은 페어웨이를 지키며 3온에 성공했으나, 노승희는 두 번째 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공이 러프 경사면에 올라갔다. 네 번째 샷을 그린에 올린 노승희의 파 퍼트가 빗나가면서 서연정의 ‘259전 260기’ 우승이 완성됐다.

서연정은 “그동안 포기할까 많이 고민했지만, 꾹 참고 했더니 우승했다”며 “우승이 없어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면 우승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노승희는 이날 정규 홀 마지막 18번홀에서 약 5m 버디 퍼트를 넣었다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으나, 이를 넣지 못해 첫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신인 황유민(20)은 12언더파 204타 단독 3위에 올랐다. 박민지(25)는 11언더파 205타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박민지는 이 대회에 걸린 대상포인트 37점을 보태 이예원(396점)을 제치고 대상 포인트 1위(415점)로 올라섰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