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막내 해녀 동행 담은 다큐 '물꽃의 전설' 고희영 감독
"해녀들 자부심 생겨 보람…소박한 어머니 대접받는 느낌"
"변해가는 제주 바다와 해녀 사회…예찬만 할 순 없었죠"
해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하는 어머니'로 꼽힌다.

기원 전후 등장한 이들은 집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바다에서는 먹을 것을 구하며 살았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화를 이끈 여성 노동자들이 '공순이'라 불리며 천시된 것처럼 해녀 역시 오랫동안 하나의 직업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2016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고희영 감독은 이에 앞선 2008년부터 제주 해녀들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물숨'을 촬영했다.

제주시는 유네스코 등재에 공로를 세웠다며 그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기도 했다.

고 감독은 다시 한번 해녀를 소재로 한 '물꽃의 전설'을 들고 돌아왔다.

대상군 출신 해녀 현순직 할머니와 막내 해녀 채지애 씨의 동행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개봉일인 지난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고 감독은 "'물숨'을 촬영할 때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해녀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서도 "하지만 바다와 해녀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마음을 바꿨다"고 밝혔다.

"바다가 망가지고 해녀 수가 급감하는데, 언제까지 (제주를) 예찬만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순직 할머니가 눈이 펑펑 오는데도 백발을 휘날리면서 바다에 들어가는 걸 봤어요.

그 뒤를 누가 봐도 막내인 지애 씨가 막 따라갔고요.

굉장히 흥미로운 대비라 생각하면서 카메라를 들었죠."
현 할머니는 구순을 훌쩍 넘긴 경력 87년의 해녀다.

지애 씨는 촬영 시작 당시 2년 차 막내였지만, 할머니와 '물벗'이 돼 바닷속에서 서로를 보살핀다.

"변해가는 제주 바다와 해녀 사회…예찬만 할 순 없었죠"
고 감독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물벗은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는 친구이자 동료예요.

짝이 돼서 수면 위로 나와야 하는 때를 봐주죠. 그 애틋함은 어떤 육지의 벗과도 달라요.

바다를 나와서도 지애 씨는 할머니에게 각별해요.

할머니도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지식을 지애 씨에게 주고 싶어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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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경력 차가 큰 만큼 자신이 아는 바다도 각각 다르다.

현 할머니는 청정 바다 시절의 제주를 기억하지만, 지애 씨는 이를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과거 봤다는 바닷속 오색찬란한 '물꽃'의 존재도 처음 들어본다.

고 감독 역시 제주 태생이지만 알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엔 덜컥 걱정됐어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근데 자세히 들어보니 묘사가 너무 구체적이더라고요.

해양생물 연구원에 문의했더니 할머니가 말하는 물꽃이 멸종위기종 산호초인 밤수지맨드라미였어요.

그때부터 물꽃 찾기가 시작됐죠."
바다가 오염된 탓에 깨끗한 바다에만 사는 물꽃을 찾는 여정은 매우 지난했다.

고 감독은 다큐멘터리에서 매년 같은 달 같은 자리에서 촬영한 바다 모습을 보여주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눈에 띄게 해조류와 어패류가 사라진다.

그는 "'물숨'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바다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요즘 해녀들은 잡을 것이 없어 보말(바다 고둥)을 캐는 처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해녀분들은 자기들이 잘못해서 바다가 이상해진 줄 알아요.

바다를 망가뜨린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도요.

우리 중에 바다에 빚을 안 지고 산 사람들은 없지 않을까요? 여태 바다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바다에 뭘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봤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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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제주 바다와 해녀 사회…예찬만 할 순 없었죠"
해녀 이야기를 하는 데에만 총 13년을 들인 고 감독은 오랜 시간만큼 보람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해녀들이 자부심을 갖게 된 게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물숨'을 찍을 때는 해녀가 천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가면 해녀분들한테 돌도 맞고 그랬어요.

하하. 굉장히 훌륭한 워킹맘이고 남성에 대한 의존도가 제로인 독립적인 여자들인데, 자존감이 낮아 안타까웠죠. 근데 영화가 개봉하고 영화제도 모시고 다니면서 스스로 인식이 바뀌는 게 서서히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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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초라하고 소박한 어머니가 대접받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감독은 이번 작품 역시 해녀들, 특히 평생을 바다와 함께한 현 할머니에게 전하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바다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어떤 애인을 바라본들 저렇게 애틋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해요.

물질로 돈을 벌어서 오라버니들 뒷바라지하고 아들들을 홀로 키우셨대요.

독도에서 3년간 물질을 하기도 하셨고요.

말 그대로 해녀의 전설 같으신 분이죠. 이 작품은 할머니께 제가 바치는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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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제주 바다와 해녀 사회…예찬만 할 순 없었죠"
/연합뉴스